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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판례리뷰

보고서 결재 반려도 갑질에 해당하는가

울산지방법원 2021.04.15 선고 판결

  • 원문제목노동리뷰 2021년 7월호(통권 제196호)
  • 출판일2021.09.01
  • 저자권오상

판결 요지

【판결 요지】

 행정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항고소송에서는 당해 처분의 적법을 주장하는 처분청인 피고에게 그 적법 여부에 대한 입증 책임이 있으므로(대법원 2007.1.12. 선고 2006두12937 판결 등 참조), 징계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에서 처분청인 피고가 징계 사유가 존재한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원고가 보고서를 반려하는 경우 반려 사유를 기재하는 등으로 업무상 필요에 의해 이유를 제시하며 보고서를 수정ㆍ반려한 것으로 보이는바, 이와 같은 사정만으로는 원고가 해당 직원에게 갑질을 하여 지방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그 징계 사유가 모두 인정되지 않으므로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

 

 

직장은 근로자들이 삶을 영위하는 곳으로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에서 일을 할 권리는 근로자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이다. 그런데 병원에서의 ‘간호사 태움’이나, 일명 ‘땅콩 회항’으로 알려진 대기업 오너 일가의 폭언ㆍ폭행 사건 등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켰고, 어렵지 않게 직장 내 괴롭힘을 마주하게 되면서 이제 더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방치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에 대한 입법 요구가 높아졌고, 2018년12월27일 국회 본회에서 별도의 입법 형식이 아닌 「근로기준법」에 제76조의 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를 신설해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의하고 이를 금지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의결되어 2019년7월1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한편, 현 정부에서는 100대 국정과제에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 마련’을 선정한 바 있으며, 2019년2월18일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대책의 후속 조치 중 하나로 「공공분야 갑질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였다. 공공 분야 갑질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에는 갑질의 주요 유형별 판단 기준, 조치와 대응 방안, 실제 사례, 갑질 위험도 진단 체크리스트 등의 내용을 담았는데, ‘갑질’은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권한을 남용하거나, 우월적 지위에서 비롯되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상대방에게 행하는 부당한 요구나 처우를 의미하며, 주요 유형별 갑질로 ①법령 등 위반, ②사적 이익 요구, ③부당한 인사, ④ 비인격적 대우, ⑤기관 이기주의, ⑥업무 불이익, ⑦부당한 민원 응대, ⑧기타 사항이 있으며, 기타 사항의 유형으로는 따돌림, 부당한 차별행위, 모임 참여 강요, 갑질 피해 신고 방해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 「지방공기업법」에 따른 지방공기업,  「지방자치단체 출자ㆍ출연 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방자치단체 출자ㆍ출연 기관 및 중앙행정기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으로부터 공무를 위탁받아 행하는 기관⋅개인 또는 법인과 공무원으로 의제 적용되는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대상판결은 공공 분야 갑질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에서 정한 갑질행위를 하는 등 「지방공무원법」 제48조에 따른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음을 사유로 감봉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은 자에 대하여 그 징계 처분의 정당성을 판단하기 위해 제한적이나마 갑질의 판단 기준 및 해당 여부를 살펴보고 판시한 사례로서 의의가 있다.

대상판결의 ‘사건 경과’를 살펴보면, 원고는 1989년7월15일 지방농업기원보로 임용되어 2018년 1월1일부터 울주군청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2019년7월4일부터는 울주군 한 면의 면장으로 근무하였다. 원고는 2019년4월24일부터 2019년5월2일까지 소속 부서 직원 E가 작성한 보고서 3건을 수차례 수정ㆍ반려 처리하였고, 해당 직원 E가 사업 진행에 차질이 염려되어 불면증 등 스트레스를 겪게 되었다. 한편 원고는 2019년5월경 울주군청 승강기에서 직원 E에게 ‘돼지비계’라는 표현을 하였으며, 소속 부서 직원들이 듣는 앞에서 지인과 사적으로 통화하면서 큰소리로 욕설을 하였다. 이에 공공 분야 갑질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에서 정한 갑질행위 및 「지방공무원법」 제48조에 따른 성실의무를 위반하였음을 징계 사유로 감봉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원고는 2019년11월 20일 소청심사를 청구하였으나 울산광역시소청심사위원회가 2020년1월17일 청구를 기각하자 “직원들에게 갑질을 하려는 의도도 없었고,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해도 감봉 3개월은 지나치게 무겁다.”라고 주장하며 징계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울산지방법원에 제기하였다.

울산지방법원은 제1 징계 사유인 보고서 결재 반려와 관련하여 “①해당 직원이 2019년4월24일부터 5월2일까지 9일간 상신한 보고서는 12건으로, 원고는 위 3건을 제외한 나머지 9건은 해당 직원이 보고서를 상신한 날 즉시 결재를 한 점, ②원고는 보고서를 반려하는 경우 반려사유를 기재하거나 해당 직원에게 구두로 설명한 것으로 보이는 점, ③원고는 회의 시 소속 직원들에게 긴급한 사항은 결재를 상신함과 동시에 이야기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는 업무상 필요에 의해 이유를 제시하며 해당 직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수정ㆍ반려한 것으로 보이는바, 이와 같은 사정만으로는 원고가 해당 직원에게 갑질을 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판단하였다. 또한 울산지방법원은 제2 징계 사유인 ‘돼지비계’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① 당시 승강기에 같이 있었다고 하는 울주군청 축수산과 소속 F는 원고가 해당 직원에게 운동을 독려한 사실은 있으나 돼지비계라는 단어로 비교한 사실은 없다는 상반된 진술을 하고 있어, 원고가 해당 직원에게 위와 같은 특정한 단어를 사용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②설령 원고가 해당 직원에게 위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원고와 해당 직원과의 관계, 발언 횟수, 당시 상황, 원고의 발언 의도 등에 비추어 볼 때,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원고가 해당 직원에게 갑질을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판단하였다. 마지막 징계 사유인 직원들 앞에서 타인(G 농업협동조합장)과 통화를 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던 점도 “G 농협 직원이 소속 부서 직원에게 항의를 하며 부적절한 말(소속 직원에게 ‘아줌마’로 호칭, ‘한 대 맞을랍니까’라는 표현 사용)을 했던 사건이 발생했던 것으로 보이고, 원고는 위와 같은 사건을 보고받고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다소 거친 언동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바,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 원고가 지방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판단하면서 원고에 대한 감봉 3개월의 징계 처분은 그 징계 사유가 모두 인정되지 않으므로 위법하여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및 공공 분야 갑질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상 ‘갑질’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 내지 사회⋅경제적 관계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할 것을 요건으로 한다. 또한 적어도 업무 관련성과 관련한 요건을 요구하면서 ①업무 관련성이 있는 상황에서 ②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인정되더라도 사회통념상 상당하지 않을 경우에 성립하게 된다. 그런데 사용자의 인사 조치나 상급자의 업무 지시 등은 인사권 내지 노무지휘권의 일환으로 볼 수 있으므로 상당한 재량성을 가지고, 다만 권리남용에 해당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사회통념상 범위를 벗어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직장 내 괴롭힘 또는 갑질에 해당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또는 갑질은 다양한 유형과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 직장 내 괴롭힘 또는 갑질 여부는 당사자의 관계, 행위 장소(공개된 장소 여부 등) 및 상황(근무시간 여부, 대안이 없는 불가피한 행위 여부, 업무 내용, 그간 당사자와의 관계 등), 행위에 대한 피해자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인 반응의 내용, 행위의 내용 및 정도, 행위가 일회적인지 계속적인 것인지 여부 등 구체적인 사정을 참작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 정당한 업무 지시인지, 직장 내 괴롭힘 또는 갑질인지 여부가 불분명하고, 그 경계에 놓인 경우가 많다. 또한 개인적 특성 및 처한 상황에 따라서 똑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불편해하고 스트레스를 받지만, 또 누군가는 문제없이 업무를 수행한다. 업무상 정당하더라도 행위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의 판단에 따라 괴롭힘 또는 갑질이 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문제 된 행위를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신체적ㆍ정신적 고통이나 근무 환경 악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인정되거나 부당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때 직장 내 괴롭힘 또는 갑질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직원이 상신한 보고서 12건 중 9건은 상신한 날 즉시 결재를 하고 나머지 3건에 대해서는 보고서 반려 시 반려 사유를 기재하거나, 해당 직원에게 구두로 설명한 사정 등을 토대로 갑질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대상판결의 결론은 수긍이 가고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다만, 만약 반대로 직원이 상신한 보고서 12건 중 9건을 특별한 사유 없이, 별다른 설명과 피드백 없이 계속 반려하였다면 갑질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또는 갑질 피해자 보호라는 입법 및 가이드라인 제정 취지에 대해서는 백번 공감하고 직장 괴롭힘 또는 갑질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지만, 부하 직원 또는 하급자의 업무 미숙이나 지시 불이행 등에 대한 상급자의 정당한 업무 지도 내지 업무 지시는 존중받고 인정되어야 한다. 이때 어떤 기준으로 상급자의 부하 직원 또는 하급자에 대한 업무 지도 내지 업무 지시를 정당한 것으로 판단할 것이냐의 문제와 관련하여 호주 공정노동법이 “적당한 수단에 의한 합리적인 관리 조치(Reasonable management action carried out in a reasonable manner)는 괴롭힘이 아니다.”라고 명시한 부분을 참조할 수 있겠다. 물론 상급자의 업무 지도 내지 업무 지시가 적당한 수단에 의한 합리적인 관리 조치에 해당하는지 또한 판단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만, 결국 판례에서 제시하는 업무 능률의 증진, 직장 질서의 유지나 회복, 근로자 간의 인화단결, 근로자 의욕 증대, 업무 운영 원활화 및 경영 능률 증진 등 업무상 필요가 존재하고, 그 조치가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합리적이라면 직장 내 괴롭힘 또는 갑질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직장 괴롭힘 금지 입법 및 갑질 근절 가이드라인 제정 이후 직장 내 괴롭힘 또는 갑질의 다양한 유형과 판단 사례들이 축적되고 있고, 기업 현장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또는 갑질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멀기에 노사 및 사회경제 주체들이 직장 내 괴롭힘 내지 갑질을 근절하고 분쟁을 예방하는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권오상(노무법인 유앤 공인노무사,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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