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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판례리뷰

도로교통법 위반에 따른 산재급여의 제한

서울행정법원 2021.01.29 선고 판결

  • 원문제목노동리뷰 2021년 6월호(통권 제195호)
  • 출판일2021.07.09
  • 저자양승엽

판결 요지

【판결 요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2항은 근로자의 고의, 자해행위,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재해는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범죄행위에는 과실에 의한 범죄행위도 포함되며 형법에 의하여 범죄행위가 포함되는 것은 물론 특별법령에 의해 처벌되는 행위도 제외되지 않으므로 도로교통법상 범칙행위도 범죄행위에 포함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망인은 2018년4월11일 음식배달업체인 B에 입사하여 오토바이를 이용한 배달업무에 종사하였다. 2018년6월20일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배달을 완료하고 돌아오던 중 직진 차로인 4차로에서 좌회전 차로인 3차로로 진로 변경을 하다가 3차로에서 직진 주행을 하던 차량과 충돌하여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당일 사망하였다. 3차로와 4차로 사이에는 진로 변경 금지를 알리는 백색 실선이 그어져 있었고 실선 위에는 시선유도봉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망인은 이를 위반하여 시선유도봉 사이로 진입하여 차로를 변경하였다.

원고인 유족은 망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이므로 피고인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신청하였으나, 근로복지공단은 망인의 사망은 고의에 의한 「도로교통법」 위반 범죄행위가 원인이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 의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부지급 결정을 내렸다. 이에 원고 유족은 불복하여 심사청구와 재심사청구를 하였으나 같은 이유로 각각 기각되자 법원에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그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원고인 유족은 이 사건 사고에는 망인을 충돌한 차량 운전자의 전방 주시 과실이 경합하였고, 사건 장소의 도로 구조상 망인이 좌회전하기 위해서는 무리한 진로 변경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하였다. 그러나 본 사건을 심리한 행정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된 쟁점은 망인이 「도로교통법」 제48조와 벌칙 규정인 제156조를 위반하였고 이는 범죄행위에 해당하므로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에 의해 업무상 재해가 부정되는가였다.

행정법원은 먼저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의 ‘범죄행위’의 범위에 대해서 판단한다. 행정법원은 대법원 1990.2.9. 선고 89누2295 판결의 설시를 들고 있는데, 인용 판결은 산재보험법 사건은 아니고 구(舊)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 의료보험법」 사건으로 구 동법 제42조 제1항은 고의 또는 범죄행위로 인한 사고 발생은 급여를 제한한다고 규정한다. 동 판결에서 대법원은 “범죄행위에는 고의적인 범죄행위는 물론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도 모두 포함되며, 형법에 의하여 처벌되는 범죄행위가 포함되는 것은 물론 특별법령에 의하여 처벌되는 범죄행위도 여기에서 제외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므로 도로교통법 제12장의 범칙행위도 위 범죄행위에 포함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시에 대한 구체적인 논거는 설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행정법원 역시 산재보험법에 의한 보험급여는 “근로자의 생활보장적 성격 등을 고려하여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근로자의 과실을 이유로 책임을 부정하거나 책임 범위를 제한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2항에 규정된 근로자의 고의ㆍ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재해의 경우에는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부인된다”고 판시하였다. 그리고 “이 사건 사고는 망인의 업무 수행 중에 발생한 것이기는 하나 망인이 좌회전 차로로 진로 변경이 금지되어 있는 도로에서 위법하게 진로 변경을 하다가 발생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이 사건 사고가 업무 수행에 수반되는 통상적인 범위 내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사회보험법상의 보험급여는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생존권)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각 입법의 목적에 비추어 엄격하게 제한함이 원칙이다. 그러나 고의나 범죄행위 등으로 각 사회보험이 보장하고자 하는 사회적 위험을 스스로 창출한 경우 우연한 사고를 전제로 하는 보험의 원리상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 사회보험법은 각각 고의나 범죄행위 등으로 인한 사고의 경우 급여를 제한하는 규정을 갖고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회보험급여의 제한은 엄격히 해석하는 것이 입법의 목적상 타당하기 때문에 범죄행위의 범위에 형법상의 자연범뿐만 아니라 행정법규상의 법정범까지 포함되는가가 전부터 쟁점이 되어 왔다. 산재보험법에서는 이에 대한 대법원의 판시가 없고 주로 다툼이 된 영역은 「국민건강보험법」(이하 건강보험법)이었다. 행정법원이 인용한 대법원 판결 역시 구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 의료보험법」으로 그 내용과 의의가 건강보험법상의 쟁점과 동일하다.

사견으로 본 사건에 대한 행정법원과 인용한 대법원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한다. 앞서 스스로 위험을 창출한 경우 보험급여가 제한되는 것이 보험의 원리라고 하였는데 여기에 사회보험은 제한의 원리로 추가될 것이 있다. 바로 사회연대성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이다. 즉, 사회보험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연대하여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보험급여의 제한은 이러한 연대를 깨뜨렸을 때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도로교통법」상의 범칙행위가 과연 사회연대의 원칙을 파괴한 행위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해 인용한 대법원 1990.2.9. 선고 89누2295 판결의 원심인 서울고등법원 1989.3.8. 88구10086 판결을 볼 필요가 있다. 고등법원은 정반대의 판시를 하였는데 “도로교통법 위반의 범칙행위는 그 본질상 단순한 교통질서 위반행위에 불과하여 행위의 결과 발생을 요건으로 하는 일반범죄행위와는 다를 뿐 아니라,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보험사고에 대하여 상호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보험제도의 본질 및 공무원 및 사립학교교직원 의료보험법의 입법 취지에 비추어 위 범칙행위는 위 법 제42조 제1항 소정의 범죄행위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설시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다시피 「도로교통법」 위반은 행위의 결과 발생을 요구하지 않아도 성립될 수 있는 범칙행위이다. 그리고 누구나 과실로 「도로교통법」을 위반할 수 있고 생계 유지를 위해 과속 또는 차선 위반을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도로교통법」 위반이 사회보험을 지탱하는 사회연대성을 깨뜨린 것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급여 제한 사유로서 범죄의 범위를 축소하여 해석하는 또 다른 견해가 있다. 고의 또는 범죄행위에 의한 위험 창출에 대한 사회보험급여 제한은 “가입자의 의무 위반에 대한 사회보장법의 특유한 제재이다.” 따라서 이를 해석할 때도 사회보장법의 가치판단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바로 “사회보험공동체에 위해성이 있는, 보험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비추어 비난가능한 행위인가 여부이다.” “기본적으로 형사상의 범죄는 그 자체가 불법인 반면, 행정범죄는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실정법의 규정에 의해서 범죄행위로 유형화된 것”으로 형사범에 비해서 본질적으로 비난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정범죄에 의한 사회보험급여의 제한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도로교통법」상의 범죄행위라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합의한 규정을 어긴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대가는 「도로교통법」상의 벌칙규정으로 다하였고 사회보험급여의 제한은 또 다른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도로교통법」상의 범죄행위가 사회보험의 연대성을 깨뜨려 구성원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만한 것인가를 보아야 한다. 그러나 「도로교통법」은 그 목적이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모든 위험과 장해를 방지하고 제거”(동법 제1조)하는 것으로 도로상의 교통사고를 막는 예방적 성격의 입법이다. 이는 행정적 목적일 뿐 우리 사회를 파괴하는 행위를 제어하기 위함이 아니다. 따라서 산재보험법 제37조 제2항 본문뿐만 아니라 건강보험법 제53조 제1항 제1호상의 ‘범죄행위’에는 「도로교통법」상의 범죄행위를 포함하여 행정법규상의 범죄행위는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

 

양승엽(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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