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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판례리뷰

객관적 사실인가 주관적 의사인가-2년을 초과하는 기간제 근로계약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으로 간주할 때의 판단기준과 관련하여

대법원 2020.08.27 선고 판결

  • 원문제목노동리뷰 2020년 12월호(통권 제189호)
  • 출판일2021.01.04
  • 저자박제성

판결 요지

【판결요지】
공개채용 절차를 거쳐 새로운 기간제 근로계약이 체결됨으로써 원고 근로자와 참가인 사용자 사이에 기존 기간제 근로계약의 단순한 반복 또는 갱신이 아닌 새로운 근로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어 그 시점에 근로관계는 단절되었고, 결국 기간제법 제4조에서 말하는 계속 근로한 총기간을 산정할 때 이 새로운 기간제 근로계약이 체결된 시점을 전후한 기간제 근로계약기간을 합산할 수 없어 원고의 계속 근로한 총기간이 2년을 초과하지 않으므로, 원고를 기간제법 제4조 제2항에 따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라고 할 수 없다.

 

 

사실관계를 요약하면 이렇다. 원고는 한 달의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으로 채용되었다. 한 달 후 그 업무에 공개채용 절차가 진행되었고, 원고는 새로 1년의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으로 채용되었다. 계약은 한 번 갱신되어 원고는 2년을 근무했다. 2년 후 다시 공개채용 절차가 진행되었고, 원고는 면접에서 탈락했다. 이에 원고는 자신이 기간제로 근무한 총기간이 1개월 더하기 2년으로 2년이 초과하므로 무기계약으로 간주되어야 하고 따라서 부당해고라고 주장하였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대법원이 제시하는 법리는 다음과 같다.

기간제 근로계약의 대상이 되는 업무의 성격, 기간제 근로계약의 반복 또는 갱신과 관련한 당사자들의 의사, 반복 또는 갱신된 기간제 근로계약을 전후한 기간제 근로자의 업무 내용, 장소와 근로조건의 유사성, 기간제 근로계약의 종료와 반복 또는 갱신 과정에서 이루어진 절차나 그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당사자 사이에 기존 기간제 근로계약의 단순한 반복 또는 갱신이 아닌 새로운 근로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기간제 근로자의 계속된 근로에도 불구하고 그 시점에 근로관계가 단절되었다고 보아야 하고, 그 결과 기간제법 제4조에서 말하는 ‘계속 근로한 총기간’을 산정할 때 그 시점을 전후한 기간제 근로계약기간을 합산할 수 없다.

이 법리에 근거하여 대법원은 공개채용을 “새로운 근로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법리는 문제가 있다.

기간제법 제4조는 대법원이 제시한 구구절절한 사정들을 전혀 알지 못한다. 기간제법은 제4조 제1항 단서에서 기간제가 2년을 초과할 수 있는 사유를 명시한 다음, 이 사유가 없거나 소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년을 초과하면 무기계약으로 간주된다고 정하고 있을 뿐이다. 공개채용은 이 사유에 포함되지 않는다. 원고는 같은 곳에서 같은 업무를 같은 조건으로 2년 넘게 일했다. 그러면 무기계약으로 간주된다. 이것이 기간제법의 규정이다.

이것은 2년을 초과하는 기간제 근로계약을 무기계약으로 간주할 때의 판단기준과 관련하여 객관설의 입장을 취한 것이다. 즉 계약의 형식이나 당사자의 주관적 의사가 아니라 2년을 초과하여 일하였다는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다.

반면에 대법원은 주관설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특히 위에서 인용한 법리에서 “기간제 근로계약의 반복 또는 갱신과 관련한 당사자들의 의사”를 고려사항으로 명시하고 있는 점에서 드러난다.

판결문 곳곳에서도 주관설에 입각한 표현이 많이 보인다. 예를 들면, 공개채용 절차에 따른 계약은 최대 2년으로 하기로 “합의”하였다거나, 사용자는 근로자를 계속 채용하겠다는 “의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거나, 근로자는 계약을 반복하거나 갱신한다는 “인식”이나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거나, 공개채용 절차가 기간제법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로 이루어진 형식적인 절차로 볼 수는 없다거나 하는 등의 설시 부분이 그렇다.

대상판결은 공개채용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계약직원 인사세칙을 길게 인용한다.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실질적인 절차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공개채용은 계약의 체결방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 즉 계약의 형식에 불과하다. 인사세칙에서 정한 대로 절차를 진행하였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더군다나 인사세칙은 사용자가 단독으로 작성한 것이다.

기간제법은 객관설을 지지하고 있는데 대상판결은 주관설을 택하고 있다.

사실 우리 대법원은 도급계약 등을 근로계약으로 재분류하는 것, 간접고용을 직접고용으로 재분류하는 것 또는 기간제 근로계약을 무기계약으로 재분류하는 것 등 이른바 근로계약의 재분류 문제에 있어서 다분히 주관설에 경도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된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성 판단에 있어서 대법원은 “계약의 형식이 민법상의 고용계약인지 또는 도급계약인지에 관계없이” 그 실질에 따라서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를 제시하면서도, 당사자들의 의사를 배제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노동법 선진국의 판례는 객관설을 분명하게 표명한다. 즉 계약의 형식이나 당사자의 의사를 고려하면 안 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종속적 노동관계에서는 당사자의 의사의 왜곡 또는 일탈이 언제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분류의 개념 자체가 그렇다. 당사자들이 합의해서 부여한 계약의 주관적 법형식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공서(公序)에 근거하여 계약의 법형식을 재분류해서 일정하게 강제하겠다는 것이므로. 그래서 재분류를 독일에서는 법형식강제라 하기도 한다. 용어는 다르지만 노동법 선진국은 모두 유사한 법제를 가지고 있다. 당사자의 의사가 허위나 착오이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객관설은 당사자의 주관적 의사가 유효하게 성립할 수 있는 객관적 경계에 관한 것이다.

우리 판례에서는 이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 물론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실제의 판단에서는 고려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계약의 형식이나 당사자의 의사나 결국 같은 말이 아니냐 하면서. 하지만 판결문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법리적 오류를 보건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른바 특고 계약에서는 종속관계를 보여주는 징표들이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법원은 이를 종속적 사실관계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계약서의 단순 이행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한다. 예를 들어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한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으면, 실제로 그렇게 출퇴근을 하더라도 그것은 종속성을 드러내는 사실관계가 아니라 계약서에 따른 결과일 뿐이라고 해석하는 식이다.

그러나 사용자의 구체적 지시에 의한 것이든 사전에 계약서에 명시된 바에 의한 것이든 상관없이, 근로자가 정시출근 정시퇴근을 한다는 사실은 종속적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징표로 해석되어야 한다. 사실의 원인은 묻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 그 자체로서 판단한다. 그것이 실질에 따른 판단이고 사실 우선의 판단이다. 그것이 객관설이다.

판례는 계약의 형식에 상관없이 실질에 따라서 판단해야 한다고 객관설을 지지하는 듯 하면서도, 당사자의 의사를 배제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계약의 형식에 좌우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특고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몇몇 판결에서는 계약의 명칭이 근로계약이 아니라 업무위탁계약이라는 점을 판단 근거로 삼기도 한다. 모두 당사자의 의사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판례는 당사자의 의사가 허위이거나 착오에 의한 것인 경우에만 문제 삼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의사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의사를 우선하겠다는 것으로도 읽힌다. 대상판결도 그 입장에 동참하고 있는 것 같다.

 

박제성(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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