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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판례리뷰

근로자재해보장보험과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이의 구상관계 인정 여부

대법원 2020.07.23 선고 판결

  • 원문제목노동리뷰 2020년 9월호(통권 제186호)
  • 출판일2020.12.11
  • 저자노호창

판결 요지

【판결요지】
근재보험의 보험자가 피해근로자에게 산재보상분에 해당하는 손해까지 보상한 경우 이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급여 지급의무를 대신 이행한 것으로서, 이런 사정을 근재보험의 보험자와 피해근로자가 알고 있었다면 민법 제469조에 의하여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급여 지급의무가 소멸하고 근재보험의 보험자는 근로복지공단에게 산재보상분 상당을 구상할 수 있다. 비록 근로복지공단이 부담하는 산재보험급여 지급의무는 민법상 손해배상채무와 그 취지나 목적이 다르지만, 다음의 여러 사정에 비추어 보면 관련 민법 규정이 정하는 요건이 갖추어진 경우에 근재보험 보험자의 보상을 유효한 변제로 보아 근로복지공단이 피해근로자에 대하여 산재보험급여 지급의무를 면하고 대신 근재보험 보험자에 대하여 구상의무를 부담하는 것을 부정할 이유가 없다. 제3자로부터 손해를 배상받은 피해근로자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추가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부당한 이중전보를 피하고자 하는 산재보험법의 취지에 맞지 않다. 공적인 성질을 가진 사회보험인 산재보험 사업을 수행하는 근로복지공단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제3자의 출연으로 산재보험급여 지급의무를 면하는 이익을 얻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신속한 보상이라는 산재보험법의 취지를 고려할 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해관계 없는 제3자가 먼저 피해근로자에게 보상하는 것이 근로복지공단의 의사에 반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만일 근재보험의 보험자가 한 변제가 채무자인 근로복지공단의 의사에 반하는 등의 이유로 유효하지 않아 피해근로자가 수령한 보상금을 근재보험의 보험자에게 반환하여야 한다면, 피해근로자는 다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보험급여를 지급받아야 비로소 보상절차가 완료될 수 있어 피해근로자의 손해를 신속하게 보상하고자 하는 산재보험법의 취지에 반한다.

 

 

대상판결은 민간보험인 근로자재해보장보험(이하 ‘근재보험’)의 보험자(원고)가 근재보험의 약관에서, 보험자는 피보험자(회사)의 근로자에게 생긴 업무상 재해로 인하여 피보험자가 부담하는 손해배상책임 중 의무보험인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에 의해 전보되는 범위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보상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정하였다면, 근재보험에서 산업재해를 입은 근로자의 손해 중 산재보험에 의해 담보되는 범위를 초과하는 부분만 보상할 의무가 있음에도 피해근로자에게 손해 전부를 보상한 경우, 근재보험의 보험자는 피고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보험에 의해 담보되는 금액 상당액을 구상할 수 있다고 판단한 사례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러하다. 원고는 기계설비공사업을 하는 회사와 근재보험을 체결한 보험자이다. 근재보험 약관에 따르면, 원고는 위 회사의 근로자에게 생긴 업무상 재해로 인하여 회사가 부담하는 손해를 보상하되, 보상액이 의무보험에서 보상하는 금액을 초과할 때는 그 초과액만을 보상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회사의 근로자(이하 ‘피재근로자’)는 2011년 6월 24일 공사현장에서 작업하던 중 추락하여 요추골절의 상해를 입었다(이하 ‘이 사건 사고’). 피재근로자는 2011년 12월 25일에 회사를 상대로 이 사건 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법원은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피재근로자의 영구장해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여 회사가 피재근로자에게 일실수입 및 위자료와 지연손해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판결을 선고하였고 회사가 항소하였으나 항소 기각 후 확정되었다. 이후 판결의 결과에 따라 원고는 2014년 7월 3일 회사의 보험자로서 피재근로자에게 보험금 합계 총 73,622,074원을 지급하였다. 그런데 원고가 피재근로자에게 지급한 보험금 중에는 피재근로자가 산재보험을 통해 피고(근로복지공단)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장해보상일시금 14,454,000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피재근로자가 입은 손해 중 장해보상일시금 14,454,000원은 본래 피고에게 지급의무가 있었던 것인데, 이러한 사정은 피재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의 변론과정 중에 이미 확인된 바 있었다. 요컨대, 회사의 보험자인 원고는 장해보상일시금에 대해서는 사실 피재근로자에게 지급할 의무가 없었지만 이 금액까지 포함된 금액을 보험금으로 우선 피재근로자에게 지급한 것이고 이 장해보상일시금에 해당하는 액수에 대해 피고 근로복지공단에게 구상청구를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채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변제를 하는 것을 비채변제라 하고 수령자 입장에서는 부당이득을 한 것이니까 변제자가 돌려받을 수 있어야 한다(「민법」 제741조). 그런데 민법에서는 채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변제를 한 경우의 유형과 효과에 대해서 몇 가지로 나누어 구분하고 있다. 첫째, 채무없음을 알고 이를 변제한 때에는 그 반환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민법」 제742조). 이 경우는 변제자 스스로가 자신에게 채무가 없음을 알고 있지만 자기 채무라고 생각하고 변제를 한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타인채무 변제에 대해서는 별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 변제자가 자신에게 채무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수령자가 증명을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채무가 없는데 변제한다는 것은 통상적인 경우가 아니어서 변제자의 선의를 추정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변제기에 있지 아니한 채무를 변제한 경우에 그 반환을 청구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고 다만 채무자가 착오로 인하여 변제한 때에는 채권자는 이로 인하여 얻은 이익을 반환하여야 한다(「민법」 제743조). 이 경우는 엄밀히 따지면 비채변제는 아니다.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채무없는 자가 착오로 인하여 변제한 경우에 그 변제가 도의관념에 적합한 때에는 그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민법」 제744조). 소위 도의관념에 적합한 비채변제이다. 넷째, 타인채무의 변제이다. 채무자 아닌 자가 착오로 타인의 채무를 변제한 경우에, 원칙적으로는 반환청구가 가능하지만, 이 경우 만일 채권자가 선의로 증서를 훼멸하거나 담보를 포기하거나 시효로 인하여 그 채권을 잃은 때에는 변제자는 그 반환을 청구하지 못하고 이 경우 변제자는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민법」 제745조).

대상판결의 사안은 채무가 없지만 변제한 경우에 해당하여 소위 비채변제 사안이긴 하지만 세부적인 유형을 따지면, 타인채무의 변제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타인채무의 변제에 대해 「민법」 제745조는 채무자 아닌 자가 착오로 타인의 채무를 변제하였고 이후 채권자가 선의로 증서를 훼멸하거나 담보를 포기하거나 시효로 인하여 그 채권을 잃은 경우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어서 그 이외의 타인채무의 변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민법」 제745조 이외의 타인채무 변제의 효과에 대해서는 「민법」 제469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민법」 제469조에서는 “①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이해관계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대상판결의 사안은 「민법」 제469조가 문제되는 유형이다.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은 「민법」 제469조를 토대로 하여, 채무자 아닌 제3자가 타인의 채무를 변제할 의사로 타인의 채무를 변제하고 채권자도 변제를 수령하면서 그러한 사정을 인식하였다면 「민법」 제469조에 의하여 제3자 변제의 대상인 타인의 채무는 소멸하고 제3자는 채무자에게 구상할 수 있고, 이해관계 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할 수 없는데 채무자의 반대의사는 제3자가 변제할 당시의 객관적인 제반사정에 비추어 명확하게 인식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함부로 채무자의 반대의사를 추정함으로써 제3자의 변제 효과를 무효화시키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원고가 피재근로자에게 산재보험급여에 해당하는 손해, 즉 산재보상분까지 보상한 경우 이는 본래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급여 지급의무를 대신 이행한 것으로서, 이런 사정을 원고와 피재근로자가 알고 있었다면 「민법」 제469조에 의하여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급여 지급의무가 소멸하고 원고는 피고 근로복지공단에게 산재보험급여에 해당하는 액수를 구상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아울러 대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이 부담하는 산재보험급여 지급의무가 민법상 손해배상채무와 그 취지나 목적이 다르지만, 부당한 이중지급을 피하고자 하는 산재보험법의 취지, 산재보험 사업을 수행하는 근로복지공단이 정당한 이유없이 제3자의 출연으로 산재보험급여 지급의무를 면하는 이익을 얻을 이유가 없다는 점, 피재근로자에 대한 신속한 보상의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관련 민법 규정이 정하는 요건이 갖추어진 경우에 근재보험 보험자의 보상을 유효한 변제로 보아 근로복지공단이 피해근로자에 대하여 산재보험급여 지급의무를 면하고 대신 근재보험 보험자에 대하여 구상의무를 부담하는 것을 부정할 이유가 없다고 첨언하였다.

대상판결의 사안은 다분히 민사법적인 성격이 강한 사건이지만, 대법원이 형식적인 민사법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산재보험이라고 하는 사회보험의 존재 취지와 목적을 상당히 고려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호창(호서대학교 법경찰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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