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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판례리뷰

기간제 근로계약과 갱신 기대권

대법원 2012.06.14 선고 판결

  • 원문제목노동법학 제44호
  • 출판일2014.07.02
  • 저자박은정

판결 요지

[판결요지] 

당해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근로자에게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이를 위반하여 부당하게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력이 없고, 이 경우 기간 만료 후의 근로관계는 종전의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과 동일하다.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은 기간의 완성과 함께 해지되는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 시행 이전의 근로기준법 제16조에서 정한 근로계약의 기간(“근로계약은 기간을 정하지 아니한 것과 일정한 사업의 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것 외에는 그 기간은 1년을 초과하지 못한다.”)을 해석하면서, 이때 근로계약의 기간은 근로자가 1년 이상의 계약기간을 강요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규정일 뿐 1년의 기간 후에 근로관계가 당연히 소멸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보는 입장, 기간의 정함이 당사자 간에 합의되어 있는 경우에는 기간의 만료에 의하여 당연히 근로관계가 종료된다고 보는 입장, 기간의 만료에 의하여 근로계약이 종료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기간 만료 시에 계약의 갱신을 거절할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해고의 의사표시와 같이 평가하여야 한다는 입장 등이 구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은 기간의 완성과 함께 해지된다고 보는 것이 현재의 다수 학설과 판례다. 다만, 그에 대한 예외가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의 반복․갱신에 따라 근로계약의 기간이 의미를 상실했다고 보게 되는 경우다. 

기간제 근로계약의 반복․갱신으로 인하여 근로계약의 기간이 효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은 두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1차적으로 ‘기간의 정함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는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다. 소위 연세어학당 사건(대법원 1994.1.11. 선고 93다17843 판결)에서 법원은 “기간을 정하여 채용된 근로자라고 할지라도 장기간에 걸쳐서 그 기간의 갱신이 반복되어 그 정한 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게 된 경우에는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의 경우와 다를 바가 없게 되는 것이고, 그 경우에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갱신계약의 체결을 거절하는 것은 해고와 마찬가지로 무효”라고 했다. 그러나 이후 법원은 이러한 ‘기간의 정함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는 사정이 없더라도, ‘계약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 근로계약기간에도 불구하고 근로계약이 종료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판결례로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건(대법원 2006.2.24. 선고 2005두5673 판결), 한세대학 사건(대법원 2007.10.11. 선고 2007두11566 판결), 서울특별시시설관리공단 사건(대법원 2011.4.14. 선고 2007두1729 판결), ㈜에스지신용정보 사건(대법원 2011.7.28. 선고 2009두5374 판결), 국민은행 사건(대법원 2011.11.10. 선고 2010두24128 판결) 등.

 즉 1차적으로 근로계약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한지, 설사 형식에 불과하지 않더라도 2차적으로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단계적 판단을 내리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이 같은 단계적 판단이 필요한 이유는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의 전제, 즉 “기간을 정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의 경우 그 기간이 만료됨으로써 근로자로서의 신분관계는 당연히 종료되고, 근로계약을 갱신하지 못하면 갱신 거절의 의사표시가 없어도 당연 퇴직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으로부터 찾을 수 있을 듯하다. ①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은 기간의 만료와 함께 종료되기 때문에, 우선 근로계약의 기간이 실질적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한 경우에는 해당 근로계약은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이 아닌,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 되는 것이다. 이때 ‘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한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계약기간에 대한 실질심사로서 “계약서의 내용과 근로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기간을 정한 목적과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동종의 근로계약 체결방식에 관한 관행 그리고 근로자보호법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공항버스사건(대법원 2007.7.12. 선고 2005두2247 판결).

 즉, 이때 근로계약기간의 반복․갱신은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② 이에 따라 근로계약의 기간의 정함이 실체적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판단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의 반복․갱신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 반복․갱신에 의하여 근로자에게 기간의 갱신에 대한 기대권이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근로계약의 기간 만료의 성격을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근로자에게 기간의 갱신에 대한 기대권이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는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서 기간 만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당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거나, 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근로계약의 내용과 근로계약이 이루어지게 된 동기 및 경위, 계약 갱신의 기준 등 갱신에 관한 요건이나 절차의 설정 여부 및 그 실태, 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등 당해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하게 되는 것이다.

법원이 이러한 단계적 판단을 취하고 있는 것은, 다시 말하지만 기간의 만료와 함께 근로계약이 종료된다고 보는 해석의 전제에서 출발한다.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을 민법상 기간의 정함이 있는 계약과 동일하게 취급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있지만, 일단 기간의 만료로 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이 종료하게 된다는 전제를 취하게 된다면 기간의 정함이 형식적인 것은 아닌가, 기간의 정함이 형식적이지 않더라도 그것을 형식화할 사유가 존재하지는 않는가 하는 것들을 판단해야 하고, 이 판단의 방법을 단계적으로 취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두 번째 단계에서 필요한 ‘근로자의 정당한 기대권’은 무엇을 근거로 형성되는지가 사실상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 대상 판결에서는 취업규칙 규정에 계약 갱신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점, 기간제 근로자가 담당하고 있었던 업무가 회사의 주요 업무이면서 관계 법령에서도 기간제 근로자가 담당하고 있던 업무를 필수적 업무로 규정함으로써 이 업무가 일시적․단속적인 것이 아니라 상시적․계속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점, 재계약 의사가 있는 근로자들 대다수와의 계약을 갱신하여 왔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하였다. 그러므로 ‘기대’라는 용어가 갖고 있는 선입견과는 달리 근로자의 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은, 해당 근로계약을 둘러싼 여러 객관적 증거들로부터 추정되는 것이고, 근로자 개인의 주관적 기대가 아니라 추정된 증거를 통하여 인정되는 합리적 제3자의 객관적 기대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문제는, 갱신기대권이 인정됨으로써 근로계약의 갱신이 발생한 경우 당해 근로계약의 성질이다. 즉, 갱신된 근로계약은 이전의 근로계약과 같은 기간제 근로계약일지, 아니면 새로운 근로계약의 체결로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일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갱신기대권에 집중하여 이전의 근로계약에 대한 ‘갱신’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이전과 같은 조건으로 기간제 근로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기간의 만료에 의하여 종료되는 기간제 근로계약의 체결에도 불구하고 갱신기대권이 발생할 수 있는 사정이 있었다는 정황을 고려한다면, 갱신기대권이 발생함으로써 이미 근로계약의 기간의 정함은 효력을 상실하였고 이에 따라 새로운 근로계약으로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 체결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법원은 이 문제까지는 검토하지 않고 다만 갱신기대권이 인정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을 종료한 것은 해고에 다름 아니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후의 문제에 대한 해결 기준이 필요하다고 할 것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좀 더 자세하게 논의하고자 한다.

 

박은정(인제대학교 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