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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시효의 기산점

  1. 대법원 2022-03-11 선고, 2019두59103 판결
  2. 저자 노호창

【판결 요지】 

만일 근로자에게 징계사유가 있더라도 그 사유가 나중에 밝혀지기 전까지 징계를 할 수 없었던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면, 사용자가 징계절차를 개시해도 충분할 정도로 징계사유에 대한 증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때부터 징계위원회의 개최시한이 기산된다고 보아야 한다. 

 

 

근로자와 사용자 간의 관계에 있어서, 형식적으로는 민법상 인격대등의 원리에 따라 노사대등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실질은 상하권력관계가 인정되고 있다. 그러한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징계라고 할 수 있겠다. 징계라는 것은 의미 그대로 벌주어서[懲] 조심시키는[戒] 것이기 때문에 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할 수 없고 상하권력관계가 내재하는 개념일 수밖에 없다. 국가가 국민에게 형벌을 부과할 수 있는 것이 권력적으로 국민이 국가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국가는 스스로 자의적인 형벌권을 행사하여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죄형법정주의라는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근로자에 대한 징계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죄형법정주의에 준해서 징계법정주의를 채택하는 것이 원리상 타당하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징계에 있어서 정당한 이유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실체적 정당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담보하라는 요구를 입법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한편 근로자에게 징계사유가 있다고 해서 무한정 시간이 지난 후에도 사용자는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가형벌권의 경우에도 범죄자를 잡아서 벌을 줄 권한과 책임을 국가가 가지고 있고, 법률관계의 조속한 안정의 필요성도 있으며, 수사권이라는 국가의 재원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당위성도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증거보전의 어려움도 있기에 공소시효를 두어 국가의 소추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으며(「형사소송법」 제252조~제253조의2), 설사 형을 선고받은 경우에도 일정 기간 집행을 하지 않으면 형 집행권을 소멸시키는 형의 시효마저 두고 있다(「형법」 제78조). 또한 이와 유사한 취지에서, 근로자의 특수한 형태에 해당하는 공무원의 경우에도 징계 시효를 규정하고 있고(「국가공무원법」 제83조의2) 이는 다른 공무원에 준용되고 있다. 이러한 취지들이 반영되어 민간 근로자의 경우에도 기업에서 취업규칙 등으로 징계시효를 규정하고 있고, 설사 징계시효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시간이 너무 흐른 뒤에 징계를 하는 것은 징계권 남용으로 취급될 여지가 클 것이다.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원고 회사에서 보상실무업무를 담당하던 근로자인 피고 보조참가인이 2014년 보험사기 혐의로 기소된 뒤 유죄판결(벌금형)을 확정받았는데 원고 회사가 판결이 확정된 지 3개월이 되었을 무렵인 2017년 6월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어 같은 해 7월에 징계의결을 요구하고 피고를 해임하였다. 원고 회사의 인사규정에는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는 징계의결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서 징계시효의 기산점을 판결이 확정된 날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원고 회사가 판결 확정 사실을 알게 된 날로 보아야 하는지가 다투어졌다. 대상판결은,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았을 때 원고로서는 근로자에 대한 이 사건 형사판결이 확정된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징계를 할 수 없었던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다고 판단되므로, 원고가 근로자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징계요구를 한 이상 인사규정에서 정한 징계시효를 준수한 것이라고 보았다. 

근로자에 대해 형사판결이 확정되었다는 사실은 금고 이상의 실형인 경우라면 근로자의 인신이 구속되는 조치가 발생되므로 사용자 입장에서 당연히 알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금고 미만의 실형인 경우라면 근로자 스스로 사용자에게 알려주지 않는 이상 사용자가 알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벌금형 선고 및 확정사실을 사용자 입장에서 모르고 있다가 시간이 많이 흐른 다음에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경우, 대상판결의 입장에 따르면, 사용자로서는 유죄 판결 확정을 알기 전까지는 징계를 할 수 없었던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 되어 근로자의 유죄 판결이 확정된 후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사용자가 판결 확정 사실을 알게 된 경우라도 징계 절차 개시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이해될 여지가 크다. 게다가 대법원도 종래부터, 만일 근로자에게 징계사유가 있더라도 그 사유가 나중에 밝혀지기 전까지 징계를 할 수 없었던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면, 사용자가 징계절차를 개시해도 충분할 정도로 징계사유에 대한 증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때부터 징계위원회의 개최시한이 기산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대상판결의 경우 그 사실관계를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사용자가 근로자의 비위사실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과거의 유죄 판결 확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로부터 3개월 내에 징계절차에 착수한 것이 아니다. 대상판결 사안의 경우, 사용자가 근로자의 귀책사유 및 그에 관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던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면담 및 판결문 요구 등으로 징계권 행사의 사전 준비를 하고 있던 상태였다. 다만 사용자가 근로자의 말을 믿고 기다려주고 있었는데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재판 진행 상황을 알려주지 않았고 판결 확정 후에도 판결문을 제출하고 있지 않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사용자가 우연히 다른 경로로 근로자의 판결 확정 사실을 알게 된 후 신속하게 징계절차에 착수했던 것이다. 그러하였기 때문에 대상판결은, 근로자에게 사용자가 징계권을 행사하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보았고 따라서 징계권 남용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대상판결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용자가 근로자의 징계사유에 대해 징계를 할 수 없었던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고 그 이후에 징계사유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해서 징계사유 발생 이후 아무리 오래 시간이 지나더라도 징계사유의 존재를 알게 된 시점을 무조건 징계시효 기산점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고, 근로자에게 사용자가 징계권을 행사하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는 등 징계권 남용으로 평가될 만한 사정이 없어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호창(호서대학교 법경찰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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