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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위치

  1. 대법원 2021-03-11 선고, 2018도10353 판결
  2. 저자 전형배

【판결 요지】

 사업주가 사업장에서 보건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향후 그러한 작업이 계속될 것이라는 사정을 미필적으로 인식하고도 이를 그대로 방치하고, 이로 인하여 사업장에서 보건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채로 작업이 이루어졌다면 사업주가 그러한 작업을 개별적·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위 죄는 성립한다. 위와 같은 법리는 동일한 장소에서 행하여지는 사업의 일부를 도급에 의하여 행하는 사업의 사업주에 있어서 그의 수급인이 사용하는 근로자가 구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 제3항에 규정된 산업재해 발생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인 구 산업안전보건법 제68조 제2호, 제29조 제3항 위반죄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대상판결은 2015년4월30일 경기도 이천에서 반도체 제조업을 하는 H회사의 공장에서 발생한 질식사고이다. H회사는 총공사비 1조 6,000억 원을 들여 이천에 반도체 제조시설을 건설하였는데, 건설공사 중 유기화합물 저감설비공사는 D회사에 도급을 주었다. H회사는 건설기획프로젝트팀 관리책임자이자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 H회사의 환경안전본부 이천설비기술실장 甲을 선임하였다. D회사는 유기화학물 저감설비의 단열재 시공 상태를 확인하려고 그 소속 근로자 2명을 설비 내부에 들어가도록 하였다. 그러나 설비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설비 내부에 질소가스 등이 있는지 살펴보지 않고 그대로 근로자들을 투입하였고 위 2명은 설비 내부에서 질식사하였다. 검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에 대해서는 甲과 D회사의 현장대리인 乙, 그리고 H회사와 D회사를 기소하였다(그 밖의 관련자 및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죄 부분은 논의에서 제외한다). 한편, 이 사건은 2018년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기 전에 발생한 사건으로 도급인 사업주 H회사에 대해서는 사망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하고 질식 사고 예방을 위한 보건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것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대법원은 H회사에 대하여 벌금 500만 원을, D회사에 대하여 벌금 1,000만 원을 확정하였다. 甲과 乙은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확정되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사업주인 법인 기업에 대하여 적용하려면 위반행위자의 책임을 먼저 인정하여야 한다. 따라서 대상판결에서는 甲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재판과정에서 甲이 주로 다툰 것 중 하나가 대기업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에서 늘 그렇듯이 현장의 안전보건 상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즉, 대기업의 다층적인 의사결정구조나 보고체계상 수급인 사업주가 밀폐공간 질식 사고를 막기 위해서 취해야 하는 보건조치 위반 사실을 도급인 사업주의 고위 관리자인 甲이 인식하는 것은 어렵고 따라서 甲에게는 구체적인 보건조치의무가 없거나 범죄의 고의가 부정된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위반행위자의 변론은 S전자 불산 누출 사건(대법원 2018.10.25. 선고 2016도11847 판결)에서 받아들여졌다. S전자 불산 누출 사건에서 대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위반행위자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산업안전보건법령이 정한 의무를 직접적·구체적으로 이행할 의무가 있어야 한다는 논증을 하였다. 그런데 대상판결에서는 S전자 불산 누출 사건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다른 판결의 법리를 종합하여 甲의 고의를 인정한다. 그리고 그 근거로 甲이 수급인들 사이의 공사기간 및 일정 조율 등의 공정관리, 안전작업관리 및 보완 지시, 질소 등 유틸리티 관련 업무를 직접 실행하는 등으로 도급을 준 유기화학물 저감설비의 설치 공사를 비롯한 사업의 전체적인 진행 과정을 총괄하고 수급인들 사이의 업무를 조율하였을 뿐만 아니라 안전보건과 관련한 구체적인 지시까지 하였다고 사실 인정을 하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정은 甲이 구체적·직접적으로 관여한 업무가 아니라 H회사의 팀원들이 담당한 업무였다. 이런 사실은 하급심 판결서를 읽어 보면 잘 나타나 있다(제1심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2017. 3. 8. 선고 2016고단3 판결; 제2심 수원지방법원 2018.6.11. 선고 2017노1871 판결). 그러니 평석하는 사람으로서 판결서만 대조해서는 S전자 불산 누출 사건과 대상판결이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 것이지 명확히 분석하기 어렵다.

논의를 전환해서 만일 「중대재해처벌법」을 이 사건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사망 사고가 발생하였으므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을 인정할 수 있는가이다. 수급인 사업주 소속 근로자가 사망하였으므로 적용 법조는 제5조가 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5조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제3자에게 도급, 용역, 위탁 등을 행한 경우에는 제3자의 종사자에게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제4조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 다만,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그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 한정한다.”라고 규정한다. 한편, 제4조는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확보의무를 규정하는데 대상판결에 적용될 수 있는 주된 법조는 제4조 제1항 제1호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와 제4호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일 것이다. H회사의 경우 지명도가 높은 대기업으로서 제1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일반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는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그렇게 될 것이다. 문제는 제4호이다. 경영책임자가 취하여야 하는 관리상의 조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안전·보건 관계 법령의 대표적인 것이 산업안전보건법이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상 기존의 안전보건조직이 담당하는 의무 중 어떤 것을, 또는 그런 의무에 추가하여 어떤 새로운 의무를 경영책임자의 관리상의 조치로 규정하여야 할까? 경영책임자가 질식 사고 예방 계획을 포함하여 사업 전반의 안전보건에 관한 관리상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도록 담당자에게 지휘하고, 나아가 정기적으로 이를 검토하는 회의를 주재하였다면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를 취한 것인가? 그렇다면 대상판결에서 경영책임자는 면책되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의 의무 내용과 그 이행 정도에 관해 어려운 문제를 남기고 있다. 이런 해석상 문제에 직면하는 이유는 경영책임자에게 구체적인 의무를 입법한 사례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입법하면서 참고한 영국이나 호주의 사례를 살펴보아도 경영책임자에 대한 의무는 상당히 추상적인 형태로 입법되어 있고 그 구체화는 법원에 맡기고 있다. 평석하는 사람이 보기에는 이것이 오히려 다양하고 복잡한 노동 현장의 안전보건 문제에 대응하는 데 적절한 입법 방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죄형법정주의라는 대륙법계의 고전적인 논리에 매달려 우리나라는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산업안전보건법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중대재해 처벌에 대하여 나름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해석상 난점으로 인하여 경영책임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속출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미흡한 점은 많지만 차근차근 정립되어가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의 형사처벌 이론에 따라 경영책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반행위자로 특정하고 그의 혐의를 인정한 후 법인 기업을 처벌하는 방식이 여전히 유효할 수도 있다. 만일 이런 상황이 실제로 발생할 수 있다면 중대재해에 대해 수사 실무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모두 적용하는 방식으로 형성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중대재해에 대해 경영책임자가 아닌 위반행위자, 경영책임자, 그리고 그들이 소속된 기업이 처벌되는 3중 구조가 나타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갈 길도 험난해 보인다.

 

전형배(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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