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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상 일반원칙으로서의 유리의 원칙

  1. 대법원 2019-11-14 선고, 2018다200709 판결
  2. 저자 박제성

판결요지

근로기준법 제97조를 반대해석하면,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개별 근로계약 부분은 유효하고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우선하여 적용된다. () 따라서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은 집단적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기존의 개별 근로계약 부분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고 할 수 없다. 이 경우에도 근로계약의 내용은 유효하게 존속하고, 변경된 취업규칙의 기준에 의하여 유리한 근로계약의 내용을 변경할 수 없으며, 근로자의 개별적 동의가 없는 한 취업규칙보다 유리한 근로계약의 내용이 우선하여 적용된다.”

 

 

 

근로조건에 관한 복수의 규범이 서로 충돌할 때 어떤 규범을 먼저 적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예를 들어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에서 임금을 다르게 정하고 있을 때 어떤 규범이 먼저 적용되는가 하는 문제에서, 근로자에게 유리한 조건을 먼저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유리한 조건 우선의 원칙”, 또는 줄여서 “유리의 원칙”이라고 한다. 과거에도 규범충돌의 문제를 다룬 사건이 없지는 않았지만, 유리의 원칙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경우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대상판결은 노동법상 규범충돌의 해소 원칙으로서의 유리의 원칙이 노동법상의 일반원칙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검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유리의 원칙은 노동규범들이 충돌하는 모든 경우에 제기될 수 있지만, 핵심은 단체협약과 기타 노동규범과의 위계 문제이다. 그리고 나라별로 노동규범체계에서 단체협약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유리의 원칙이 제기되는 맥락도 조금씩 달라진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단체협약은 기본적으로 해당 업종 전체 차원에서 노동력의 거래를 둘러싼 공통의 규칙을 설정하는 규범이다. 일종의 “단체법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프랑스에서 단체협약은 노동조합의 조합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업종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된다. 이것을 단체협약의 만인효라고 부른다. 마치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이 여당의 당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프랑스는 근로조건을 세세하게 규정하는 법률(노동법전)이 있기 때문에, 단체협약과 법률이라는 두 개의 “법규” 사이에 근로조건의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유리의 원칙 적용 여부가 문제된다. 프랑스에서 유리의 원칙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단체협약과 법률의 위계관계를 가리킨다. 프랑스는 유리의 원칙을 인정한다. 즉 단체협약과 법률이 서로 충돌하면 근로자에게 더 유리한 근로조건이 적용된다.

반면 독일에서 단체협약은 기본적으로 해당 업종의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 사이에 체결한 집단적 자치규범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일종의 “단체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독일에서 단체협약은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의 조합원에게만 적용된다. 전통적으로 독일은 프랑스처럼 법률로 근로조건을 세세하게 규정하는 나라가 아니라, 노사의 집단적 자치규범을 통해서 근로조건을 규율하는 나라이다. 이것을 “협약자치”라고 부른다(협약자치는 독일에 고유한 개념일 뿐, 프랑스는 이런 개념이 없다). 그러므로 단체협약과 법률이 근로조건을 놓고 충돌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반대로 규범충돌은 주로 단체협약과 근로계약 사이에 발생한다. 독일은 이 두 개의 “계약”이 충돌하는 경우에 유리의 원칙을 인정한다.

프랑스도 단체협약과 근로계약의 관계에서 유리의 원칙을 인정한다. 이것은 마치 법령과 근로계약 사이에 유리의 원칙이 인정되는 것과 유사하다. 나아가 프랑스는 유리의 원칙을 노동법상 일반원칙으로 인정한다. 그러므로 법률, 업종별 협약, 기업별 협약, 근로계약 등 모든 종류의 규범충돌에서 유리의 원칙이 적용된다.

한국에서는 단체협약의 규범력이 취약한 탓에 유리의 원칙이 제기되는 맥락이 조금 엉뚱하다. 주로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의 관계가 문제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체협약과 근로계약의 문제인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대한 과반수 노동조합의 동의가 단체협약이라는 외양을 띠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의 입법자는 여기에 유리의 원칙을 적용한다.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조건을 정한 근로계약은 그 부분에 관하여는 무효로 한다. 이 경우 무효로 된 부분은 취업규칙에 정한 기준에 따른다.”(「근로기준법」(이하, ‘근로기준법’ 제97조) 이 규정을 반대해석하면 대상판결의 논지가 된다.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정한 개별 근로계약 부분은 유효하고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우선하여 적용된다.” 취업규칙과 근로계약 사이에는 유리의 원칙이 적용된다(5).

그런데 마찬가지 해석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 제33조 제1항에 대해서도 가능한가 궁금하다. “단체협약에 정한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기준에 위반하는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의 부분은 무효로 한다.”(노동조합법 제33조 제1항) 단체협약과 취업규칙, 단체협약과 근로계약 사이에도 유리의 원칙이 적용되는가?

근로기준법 제97조와 노동조합법 제33조 사이에는 문언의 차이가 있다. 근로기준법 제97조는 “미달하는”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노동조합법 제33조는 “위반하는”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전자는 의미가 분명하지만 후자의 의미는 의견이 둘로 나뉜다.

첫 번째 견해는 유리한 위반과 불리한 위반이 모두 포함된다고 해석한다(양면적용설). 그러므로 근로자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단체협약이 우선 적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선 양면적용설은 초기업별 노사관계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는다. 단체협약의 체결 주체와 취업규칙의 동의 주체가 겹칠 수 있는 기업별 노사관계와 달리, 초기업별 노사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예를 들어 업종별 협약에서 정한 근로조건보다 유리한 내용을 기업 차원에서 취업규칙으로 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취업규칙을 무효로 보는 것은 노사관계의 현실과 지나치게 어긋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양면적용설은 노동법의 기본 정신에 반한다. 단체협약보다 근로자에게 유리한 근로계약과 취업규칙도 무효라고 해석하는 것은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근로자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한다는 노동법의 기본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

양면적용설은 사용자의 반노조 행위를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가 개별 근로자에게 단체협약보다 유리한 내용으로 근로계약을 제시함으로써 단체협약의 규범력을 훼손시키고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으므로, 그러한 시도를 막기 위해서는 유리한 근로계약도 무효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근로계약으로 단체협약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사용자의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면 당연히 강행규정 위반으로 무효이다.

두 번째 견해는 노동조합법 제33조가 무효로 하는 것은 불리한 위반만 해당된다고 해석한다(편면적용설). 유리한 경우는 근로자의 지위 향상이라는 법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무효로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편면적용설에 따르면 “위반”은 “미달”과 같은 뜻이 된다. 그렇다면 판례의 예를 따라 노동조합법 제33조를 반대해석하면, 단체협약에 정한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기준보다 유리한 근로조건 등을 정한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은 유효하고 단체협약에 우선하여 적용된다.

편면적용설이 타당하다는 사실은 근로기준법 제96조 제1항의 해석에서도 도출된다. “취업규칙은 법령이나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 적용되는 단체협약과 어긋나서는 아니 된다.”(근로기준법 제96조 제1항) 여기에서 “어긋나서는 아니 된다”는 구절은 과거에 “반할 수 없다”로 되어 있던 것을 순화(?)한 것이다. 이 규정 가운데 취업규칙과 법령 사이에 편면적용설이 맞다는 것은 너무 분명하다. 근로기준법보다 유리한 내용의 취업규칙을 법령에 어긋난다고 해서 무효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령과 취업규칙 사이에는 유리의 원칙이 적용된다(1).

근로기준법 제96조 제1항에서 법령과 단체협약은 취업규칙과의 관계에서 동위에 서 있으므로, 마찬가지로 단체협약과 취업규칙 사이에도 유리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3).

노동조합법 제33조 제1항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단체협약에 정한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기준에 위반하는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의 부분은 무효로 한다.”(노동조합법 제33조 제1항) 이 규정에서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은 단체협약과의 관계에서 동위에 서 있다. 단체협약과 취업규칙 사이에 유리의 원칙이 적용되므로, 단체협약과 근로계약 사이에도 유리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4).

법령과 근로계약 사이에도 근로기준법 제15조 제1항의 적용에 따라 유리의 원칙이 인정된다고 해석하는 데 이견이 없다(2).

 

정리해보자.

(1) 법령과 취업규칙 사이에는 유리의 원칙이 적용된다(근로기준법 제96조).

(2) 법령과 근로계약 사이에는 유리의 원칙이 적용된다(근로기준법 제15조).

(3) 단체협약과 취업규칙 사이에는 유리의 원칙이 적용된다(근로기준법 제96조, 노동조합법 제33조).

(4) 단체협약과 근로계약 사이에는 유리의 원칙이 적용된다(노동조합법 제33조).

(5) 취업규칙과 근로계약 사이에는 유리의 원칙이 적용된다(근로기준법 제97조).

 

우리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하나의 질문은 법령과 단체협약 사이에도 유리의 원칙이 적용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지만 나머지 모든 규범들 사이에 유리의 원칙이 적용되는데 이 둘 사이에서만 부정될 이유가 있는가? 그러므로 이렇게 결론 내릴 수 있다. 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법령 사이에는 유리의 원칙이 노동법상의 일반원칙으로 적용된다.(사실은 질문 하나가 더 있다. 업종별 협약과 기업별 협약 사이에도 유리의 원칙이 적용되는가 여부이다. 만약 유리의 원칙이 노동법상의 일반원칙으로 인정될 수 있다면 협약과 협약의 충돌에도 유리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질문이다. 한국은 이 질문을 부적절하게도 교섭권의 경합으로 처리하고 있음을 부기해 둔다.)

 

박제성(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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