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이라고 한다)상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타인과의 사용종속관계 속에서 노무에 종사하고 대가로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을 받아 생활하는 자를 말하고, 타인과 사용종속관계가 있는 한 당해 노무공급계약의 형태가 고용, 도급, 위임, 무명계약 등 어느 형태이든 상관없다. 구체적으로 특정 노무제공자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노무제공자의 소득이 특정 사업자에게 주로 의존하고 있는지, 노무를 제공받는 특정 사업자가 보수를 비롯하여 노무제공자와 체결하는 계약 내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지, 노무제공자가 특정 사업자의 사업 수행에 필수적인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특정 사업자의 사업을 통해서 시장에 접근하는지, 노무제공자와 특정 사업자의 법률관계가 상당한 정도로 지속적․전속적인지, 특정 사업자와 노무제공자 사이에 어느 정도 지휘․감독관계가 존재하는지, 노무제공자가 특정 사업자로부터 받는 임금․급료 등 수입이 노무 제공의 대가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나아가 노동조합법은 개별적 근로관계를 규율하기 위해 제정된 근로기준법과 달리, 헌법에 의한 근로자의 노동3권 보장을 통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 등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노동조합법의 입법 목적과 근로자에 대한 정의 규정 등을 감안하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노무제공관계의 실질에 비추어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지의 관점에서 판단하여야 하고, 반드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한정된다고 할 것은 아니다.
[2] 특정 사업자에 대한 소속을 전제로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용 이외의 계약 유형’에 의한 노무제공자까지도 포함할 수 있도록 규정한 노동조합법의 근로자 정의 규정과, 대등한 교섭력의 확보를 통해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노동조합법의 입법취지 등을 고려하면, 코레일유통의 사업에 필수적인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코레일유통과 경제적․조직적 종속관계를 이루고 있는 매점운영자들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할 필요성이 있다.
원고 코레일관광개발은 2004.8.11. 설립되어 상시근로자 약 1,000여 명을 사용하여 철도연계 관광사업 및 상품 판매업 등을 하는 공공기관이고, 피고보조참가인 전국철도노동조합(이하 “참가인 노조”)은 2015.2.16. 한국철도공사와 철도 관련 산업 및 관련 부대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여 설립된 노동조합으로서 2015.4.6. 코레일관광개발지부를 설치하여 원고 소속 근로자 약 300여 명이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참가인 노조는 2015.4.21. 원고에게 단체교섭 및 2015년 임금교섭을 요구하였으나 원고는 교섭사실공고를 하지 않았다. 이에 참가인 노조는 원고의 공고절차 미이행에 대하여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시정신청을 하였는데,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2015.5.4. 참가인 노조의 신청을 인용하였다.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재심신청을 하였으나 중앙노동위원회 역시 2015.6.1. 원고의 재심신청을 기각하였다. 이에 원고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판정에 불복하여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원고는 이 사건에서 참가인 노조에는 ‘독립사업자’인 매점사업자들 30여 명이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에서 정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요건 중 소극적 요건인 라목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에 해당해 참가인 노조는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이 아니므로 자신들은 교섭사실을 공고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 즉, 이 사건의 쟁점은 매점운영자들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매점운영자의 노무제공실태에 관한 사실관계 확인이 선행되어야 하는바, 법원이 인정한 매점운영자와 원고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원고는 공개모집을 통해 선정한 매점운영자들과 정형화된 표준용역계약서에 의해 용역계약을 체결한다. 이 용역계약서에는, 매점운영자는 독립사업자로서 원고와 고용관계에 있지 않고 대등한 관계에 있으며 계약내용을 충분히 검토하고 계약을 체결한다는 점을 확인한다는 취지가 기재되어 있다.
② 매점운영자들의 계약기간은 약 2년이며, 재계약은 원고가 매점운영자의 매장운영 전반에 대한 평가를 통해 1년 이내 단위로 결정하며 최초계약일로부터 4년이 경과하면 자동 종료되어 다시 공개모집을 통해 신규계약자를 모집한다.
③ 매점운영자들의 기본적인 업무는 용역계약에서 정한 특정 매점에서 원고의 운영지도(상품진열, 광고물부착, 매장관리 등) 및 조언에 따라 물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용역계약에 의해 업무내용과 업무시간이 결정되었다. 매점운영자들은 원고가 공급하는 상품을 원고가 정한 가격에 판매해야 하고, 판매현황을 실시간으로 포스(POS) 단말기에 등록하도록 되어 있었다. 용역계약에 따라 매점운영자들의 휴점은 월 2일까지만 가능하며 휴점을 하려면 원고 관리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매점운영자들은 원고가 실시하는 교육 및 연수를 받아야 하고, 원고가 소집하는 회의에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참석해야 했다. 원고는 자신의 비용으로 매장 내에 웹카메라를 설치․운용하였고, 매점운영자들을 상대로 정기 또는 수시로 영업지도 및 재고조사 등을 하였다. 또한 원고는 매점운영자들이 용역계약을 위반하면 경고를 할 수 있고, 영업실적이 저조하거나 지정된 판매품목 및 가격을 위반하는 등의 사유가 발생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④ 매점운영자들은 원고가 제공한 물품을 판매한 대금전액을 매일 원고의 계좌로 입금한 후, 매월 보조금과 판매대금의 일정비율로 산정된 금액을 용역비로 지급받는다.
⑤ 매점운영자들은 코레일유통의 취업규칙․복무규정․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지 아니하고, 별도의 사업자등록을 하여 사업소득세 등을 신고․납부하여야 하며, 영업활동과 관련한 일부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용역계약의 내용상 매점운영자들이 스스로 판매보조인을 고용하여 자신의 업무(판매행위 등)를 대행하도록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1심(서울행정법원 2016.1.14. 선고 2015구합66684 판결)과 2심(서울고등법원 2016.5.19. 선고 2016누35047 판결)은 “매점운영자들은 코레일유통의 매장을 운영하기 위하여 코레일유통과 사이에 이 사건 용역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는 점을 주된 논거로 하여 매점운영자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부인하였다. 구체적으로 “매점운영자들의 기본적인 업무 내용, 업무시간 및 장소는 이 사건 용역계약에 의하여 정하여진 것이고, 그 업무 내용 등이 원고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해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거나 “용역계약의 성질상” 수긍할 만한 것이며, 원고가 매점운영자들을 웹카메라로 감시하거나 계약위반행위 발생시 경고, 계약해지와 같은 제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용역계약을 체결하면서 서로 간에 양해된 사항”이라는 것이다. 1, 2심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던 종래의 골프장 캐디 사건과 레미콘기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1993.5.25. 선고 90누1731 판결, 대법원 2006.10.13. 선고 2005다64385 판결) 법리가 판단기준임을 판결문에 명시하기는 하였는데, 실상 그 구체적인 논증을 뜯어보면 과연 그러한 기준으로 판단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로 어색하다. 즉, 원심은 일단 ‘용역계약’이 ‘체결’되었으므로 매점운영자는 용역계약에 명시된 내용을 스스로 양해하고 받아들였다는 점만을 중요시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대법원은 학습지교사 사건에서 제시된 판결요지[1]의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 판단기준을 상세히 제시하면서(대법원 2018.6.15. 선고 2014두12598, 12604 판결), 이를 기초로 위 사실관계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여 근로자성을 인정하였다. 즉, ①정형화된 형식의 표준계약서에 의해 계약을 체결한 것은 주요 내용을 대부분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②매점운영자의 노무제공은 원고의 사업 수행에 필수적인 점, ③2년 이상 계약관계가 유지되므로 상당정도 전속성이 인정되는 점, ④업무내용, 업무시간, 휴점, 교육, 연수, 회의참여에 대한 통제와 일상적 감시 및 제재 수단의 존재에 비추어 어느 정도의 지휘․감독이 인정되는 점, ⑤용역비는 매점 관리와 물품 판매라는 매점운영자의 노무에 대한 대가로 지급된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원고의 사업에 필수적인 노무를 제공함으로써 원고와 경제적․조직적 종속관계를 이루고 있는 매점운영자들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1, 2심은 계약은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며 당사자들은 그러한 의무에 따라야 한다는 민사법의 대원칙만을 강조한 입장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헌법상 노동3권 보장에 근거하고 있는 노동조합법은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결론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계약의 체결과 이행 과정에서 당사자대등원칙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었는가를 중요시한다. 즉, 노동조합법은 당사자의 실질적 대등을 확보하기 위해 약자들의 단체구성을 인정하고 교섭을 요구하며 단체행동도 허용하는 것이다. 1, 2심의 논리에 기초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판단한다면, 이미 계약이 체결되어 그에 근거해 노동하고 대가를 지급받고 있는 자들은 그러한 계약조건을 ‘양해’한 자들이므로 이들은 누구도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없다는 해괴한 결론에 봉착하고 말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판결요지[2]에서 “대등한 교섭력 확보”가 노동조합법의 입법취지이며 이를 근로자성판단에 고려하여야 한다고 설시한 점은 대법원이 노동3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사건에 접근하였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번 판결에서 주목할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판결요지[2] 중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정의규정 해석과 관련하여 “특정 사업자에 대한 소속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였다는 점이다. 종래 학습지교사 사건의 대법원 판결과 관련하여,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특정 사업자’의 존재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가라는 우려가 제기된바 있는데, 이를 구체적인 설시를 통해 완전히 불식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특별한 의의가 있다.
여담으로, 이 사건에 관한 판정문과 판결문을 보면서 노동조합법 제2조 제4호 라목과 관련하여 노동조합에 근로자가 아닌 자가 한 명이라도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다면 당연히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으로 인정해서는 안 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1, 2심 판결은 매점운영자의 근로자성을 판단한 후 다른 판단 없이 곧바로 재심판정을 취소하는 결론을 내린 점에 비추어 이러한 전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제2조 4호 라목에 대해서는 이를 엄격한 기준으로 볼 것이 아니라 주체성 및 자주성을 부인하는 예시적 규정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 및 그러한 취지의 과거 판례가 존재한다. 이러한 입장에 의한다면 비록 근로자가 아닌 자가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노동조합의 주체성 및 자주성이 실질적으로 훼손되었는가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까지 나아가야 하는바, 이러한 태도가 헌법이 노동3권을 보장하는 취지에 더욱 부합하는 해석일 것이다. 특히, 교섭요구사실공고와 같이 신속성이 중요시되는 절차에서는 근로자성 판단에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보다는 근로자성에 의심이 제기되는 자가 노동조합의 주체성 및 자주성에 어떤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사안에 접근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좀 더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안의 경우에도 문제가 된 매점운영자는 30여 명이나, 참가인 노조 조합원 중 원고에서 근무하는 근로자가 300여 명에 달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방식의 접근을 하면 어땠을까. 2015년에 한 교섭요구의 당부가 2019년에야 비로소 결론이 내려졌다(실은 파기환송심이 남아 있기는 하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고, 그 문이 열리는 데 4년이 지나갔고, 대화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김 린(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