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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계약직이 근로기준법 상 사회적신분인지 여부

  1. 서울중앙지방법원 2018-06-14 선고, 2017가합507736
  2. 저자 김영택

【판결요지】 

선천적 신분과 같이 사실상 쉽게 변경할 수 없는 고정성이나 국적ㆍ신앙 등과 같이 특정한 인격과 관련된 일신전속적 표지일 것을 요하는 견해도 있으나, 위와 같은 고정성이나 인격표지성은 사회적 신분의 개념 징표로 볼 수 없다. …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이란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일정한 사회적 평가, 특히 열등하다는 평가를 수반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이 사건을 살핀다. 비정규직 대책의 일환으로서 ‘무기계약직’이라는 근로계약상의 지위 또는 고용의 형태가 우리 사회에 등장한지 10여년이 경과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일정 직업을 갖게 되는 경우 일정 기간 이를 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단기간 내에 이를 변경하는 것이 드문 것과 마찬가지로, ‘무기계약직’이라는 지위는 직업 또는 근로와 결부되었다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한번 취득하는 경우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근로기준법 제6조는 남녀의 성, 국적ㆍ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남녀의 성이나 국적, 신앙과 같은 개념적으로 명료한 지표와는 달리 ‘사회적 신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 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16년 문화방송 사건은 무기계약직을 사회적 신분으로 판단하여 주목을 받았다. 해당 사건은 사회적 신분을 “직업 뿐만 아니라 사업장 내의 직종, 직위, 직급도 상당한 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사회적 평가를 수반하거나 사업장 내에서 근로자 자신의 의사나 능력 발휘에 의하여 회피할 수 없는 사회적 분류에 해당하는 경우”로 정의하였다(서울남부지법 2016. 6. 10. 선고 2014가합3505 판결). 이 사건은 무기계약직을 사회적 신분으로 보았다는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사회적 신분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 그 지위를 점하거나(장기점유성) 자신의 의사나 능력으로 피할 수 없어야 한다(회피불가성)고 함으로써 그 요건을 엄격하게 한 측면 역시 있다.
대상 판결은 사회적 신분에 대해 과거와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선천적 신분과 같이 사실상 쉽게 변경할 수 없는 고정성이나 국적ㆍ신앙 등과 같이 특정한 인격과 관련된 일신전속적 표지 등의 개념 징표는 사회적 신분의 징표가 될 수 없다고 전제 하면서 사회적 신분을 ‘사회에서 장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일정한 사회적 평가, 특히 열등하다는 평가를 수반하는 것’이라 한다. 즉 사회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평가받는 지위를 장기간 점하고 있으면 그것으로 사회적 신분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는 문화방송 사건이 요구한 장기점유성, 회피불가성 중 장기점유성만을 요건으로 본 것이다. 대상 판결은 과거 사건에 비해 한걸음 더 나아간, 사회적 신분의 외연을 확장한 판결로 그 의의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무기계약직이나 비정규직과 같은 고용형태는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는 다수의 견해에서 보면 이러한 논지는 앞으로 많은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다른 차별의 사유인 인종, 국적, 신앙, 성별, 연령, 장애 등 전통적 차별 사유와 비교할 때 회피불가성 역시 그 요건이 되어야 함에도 이를 제외하고 단순히 장기적인 점유 여부만을 사유로 보는 것은 차별 사유 간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그러한 비판의 주된 논거일 것이다. 사회적 신분을 부정하는 다수의 견해는 근로계약의 형태는 근로자 스스로 선택하여 그러한 지위를 변경할 수 있고 고정적인 지위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근로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니 고정적이지도 않고 회피도 가능한 것 아니냐는 반론이다. 하지만 무기계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근로자의 입장에서 보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란 채용을 포기하거나 부당한 차별을 수용하는 정도가 전부이다. 무기계약이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라거나 부당한 차별은 알고 시작하니 받아들이라는 것을 두고 회피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수정, 극복해 온 것이 지금의 노동법의 역사라는 점에서 ‘회피가능 여부’를 강조하고 이를 사회적 신분의 요건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ᅠ
고용형태를 새로운 계급 내지 신분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사회적 논의는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정상의 상태가 아닌, 고용 형태에 대한 다양한 변주가 계속되고 있고 그 중심에는 무기계약직이 존재한다. 과거와는 다른 양상의 고용 현실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논의가 필요한 가운데 이제 전통적 차별의 사유를 바라보는 시각과는 다른 차별에 대한 현대적 시선이 요구된다. ‘사회적 신분’에 대한 해석은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 그 지위를 피할 수 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지금의 상태, 타자의 시각이 어떠한지로도 충분히 사회적 신분이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ᅠ
무엇보다 누군가 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 차별이 합리적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이 합당하다. 하지만 지금의 차별 판단은 차별의 속성을 따지기 전 차별을 주장하는 자의 자격부터 묻고 있다. 차별이 있다고 하면 그 차별에 주목해야 함에도 주장하는 자가 차별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를 논하고 나서야 차별을 다루는 방식이다.
대상 판결은 과거 공무원이던 무기계약 근로자들이 같은 종류의 업무를 하는 지금의 공무원들과 동일하게 자신들의 과거 공무원 경력도 호봉에 반영해 달라는 것이 청구의 취지였다. 그렇다면 다루어야 할 것은 원고의 차별 주장 그 자체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에 앞서 근로자의 자격을 묻는다. 자격이 되면 차별을 다루겠지만 자격이 되지 않으면 차별이 합리적인지 여부는 묻지도 말라고 한다. 무기계약직이 자격도 안 되면서 어디 감히 차별을 다루려 하느냐는 것이다. 그의 주장이 정당한 주장인지는 주장하는 자의 자격이 아니라 주장의 합리성이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상 판결은 무기계약직이 사회적 신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여 차별을 주장하는 자의 자격 여부를 넘어 그에 대한 차별이 어떤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를 묻는 방식으로 사건을 살피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상 판결은 그 의의가 있다. ᅠ
우리가 성별, 국적, 신앙과 같은 전통적 사유에 따른 차별과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의 차이를 구별하고 주목하는 동안 정작 차별 그 자체는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닌가 한다. 대상 판결을 시작으로 앞으로의 무기계약직 차별 사건에서는 그 차별이 다른 차별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가 아니라 왜 그러한 차별이 합리적인지 여부에 대한 설명이 중심이 되길 희망한다.

김영택(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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