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사용자가 취업규칙 등에 근로자의 정년 등 근로관계의 자동소멸사유를 당연퇴직사유로 규정한 경우, 그와 같은 당연퇴직사유를 규정한 취업규칙이 유효한 이상 그러한 사유의 발생만으로 그 사유발생일 또는 소정의 일자에 당연히 근로관계가 종료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그와 같은 근로관계의 자동소멸사유로 인한 퇴직처리는 법률상 당연히 발생한 퇴직의 사유 및 시기를 공적으로 확인하여 알려주는 ‘관념의 통지’에 불과할 뿐, 근로자의 신분을 상실시키는 ‘해고처분’과 같은 새로운 형성적 행위가 아니다.
아래와 같은 사정들을 고려하여 보면, 이 사건 근로자 2에게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의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 사건 사용자와 이 사건 근로자 2 사이의 근로관계는 이 사건 근로자 2의 정년 도래일에 적법하게 종료되었다.
① 이 사건 사용자의 취업규칙 및 단체협약 규정에 의하여 정년이 도래한 근로자들에게 촉탁직 근로계약의 체결을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가 있다거나 계약 체결에 대한 기대권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
② 정년퇴직자들과 이 사건 사용자 사이에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에 관한 관행이 성립되어 있다고 보기에도 부족하다.
③ 이 사건 근로자 2는 정년 도래일에 이 사건 사용자에게 정년도래를 이유로 한 사직원을 제출하였다.
④ 이 사건 사용자의 운전기사가 부족하다는 사정만으로 이 사건 근로자 2에게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있다고 볼 수 없다.
1) 우선 대상판결의 기초가 된 사실관계를 살펴보자. 이 사건 사용자는 시내버스 여객운송사업을 하는 회사이다. 이 사건 근로자 1은 2011년 이 사건 회사에 입사하여 근무하던 중 2015. 12.15. 정년이 도래하였고 정년 이후에는 2016.1.3. 이 사건 회사와 촉탁직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시내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한 자이다. 이 사건 근로자 2는 1999년 이 사건 회사에 입사하여 시내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하였고 2016.12.13. 정년이 도래한 자이다. 이 사건 사용자는 2016. 12.13. 이 사건 근로자 1에게 촉탁직 근로계약이 2017.1.2.로 만료됨을 통보하였고, 이 사건 근로자 2는 2016.12.13. 이 사건 회사에 정년으로 사직한다는 내용의 사직원을 자필로 작성․서명하여 제출하였다. 이후 이 사건 근로자 1과 2는 기간만료 또는 정년을 이유로 이 사건 회사가 근로관계를 종료한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구제신청을 하였다.
2) 이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는 이 사건 근로자 1과 2 모두의 법률적 쟁점을 갱신기대권의 문제로 파악하면서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우선,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지 여부와 관련해서는 단체협약 등에 촉탁직 전환 및 계약갱신의 근거규정이 있고, 정년 도래 근로자들의 촉탁직 전환 관행이 회사 내에 존재하며, 보유차량 대비 재직 운전기사가 적어 운전기사가 부족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촉탁직 근로계약 갱신의 기대권이 인정되고, 이 사건 근로자들의 근무태도나 실적에 특별한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사용자가 이 사건 근로자들에 대해 촉탁직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하고 촉탁직 근로자로 재고용하지 않은 것은 합리적 이유가 없는 부당한 인사권 행사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상판결의 판단은 쟁점과 결론에 있어 중노위의 판정과는 달랐다. 대상판결은 근로자 1의 경우 그 법적 쟁점을 중노위와 마찬가지로 촉탁직 근로계약의 갱신기대의 문제로 보았지만, 결론에 있어서는 ①촉탁직 근로계약서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는 경우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오히려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경우 계약기간 만료로 당연퇴직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 ②이 사건 사용자의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도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는 경우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 ③이 사건 사용자의 취업규칙과 단체협약에는 근로계약 갱신이 되지 아니하여 계약기간이 만료한 경우 또는 촉탁근로자로서 계약기간 1년이 도래한 날이 당연퇴직사유로 명시되어 있다는 점, ④이 사건 사용자와 촉탁직 근로자들 간에 재계약의 관행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 ⑤갱신이나 연장의 반복으로 이 사건 근로자들과 사용자 간에 근로계약의 갱신에 관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점을 들어 갱신기대권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대상판결의 당부와는 별개로 대상판결이 이 사건 근로자 1의 갱신기대권을 판단하면서 일반적인 기간제 근로계약의 갱신기대 법리를 설시한 대목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이 사건 근로자 1은 정년 이후 촉탁직 근로계약을 이미 체결한 자로서 그 계약갱신이 문제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정년 이후 기간제 근로계약의 갱신기대 법리에 비추어 판단되어야 한다. 대법원은 대법원 2017.2.3. 선고 2016두50562 판결을 통해 55세 이상 또는 정년퇴직자인 고령자와 같이 사용기간 제한의 예외인 자에게 갱신기대권 법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한편, 정년 이후 기간제 근로자에 대하여는 일반적인 기간제 근로자와는 다른 갱신기대권의 요건이 적용되어야 함을 명확히 하였다. 이를 통해 대법원은 정년을 이미 경과한 상태에서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의 갱신기대권은 일반적으로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위해 고려되는 사정뿐만 아니라, 정년이 경과하였다는 점 때문에 추가적으로 고려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3) 대상판결은 중노위의 판단과는 다르게 이 사건 근로자 2의 경우는 정년퇴직자의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의 문제로 파악하였다. 그러면서 대상판결은 【판결요지】에 적시된 이유를 들어 정년퇴직자인 이 사건 근로자 2의 촉탁직 근로계약 체결에 대한 기대권은 인정될 수 없다고 보았다.
버스, 택시 등 운수업에서는 구체적인 내용은 각 회사마다 다르지만 단체협약 또는 취업규칙 등에 ‘정규직으로 정년퇴직한 후 촉탁직으로 재고용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경우가 제법 많다. 이에 따라 이와 같은 규정이 있는 경우 이를 근거로 ‘정년퇴직자의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이 인정될 수 있는지 등이 다투어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대상판결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대상판결이 이 사건 근로자 2의 경우를 정년퇴직자의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으로 접근한 것은 온당하다. 정년퇴직자의 ‘촉탁직 재고용 기대권’의 문제는, 기간제 근로자의 일반적인 갱신기대 법리(대법원 2011.4.14. 선고 2007두1729 판결)와 정년을 경과한 상태에서 기간제(또는 촉탁직)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의 갱신기대 법리(대법원 2017.2.3. 선고 2016두50562 판결)는 구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정년퇴직자의 ‘촉탁직 재고용’에 대하여는 기간제 근로자의 갱신기대 법리는 적용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갱신기대 법리가 유추 적용되기 위한 동일 또는 유사한 상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갱신기대 법리의 본래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기간제 근로계약은 기간만료로 종료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하여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갱신기대권 법리는 기간제 근로가 이전과 동일한 형태로 갱신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경우에 적용되는 것인 데 반해, 정년퇴직자의 촉탁고용 내지 재고용은 종전의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관계가 종료되고 새로운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로서 유사한 사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판례가 인정하는 갱신기대권 법리는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근로계약이 갱신될 것이라는 신뢰를 형성시킨 경우에 기간제 근로로 인한 고용불안의 책임을 사용자가 지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는 반면, 정년퇴직 이후 재고용 또는 촉탁고용은 정년까지 고용보장을 받던 근로자에게 고용기회를 부여함으로써 기업의 입장에서는 숙련된 인력을 계속 활용함으로써 인력을 원활히 확보하는 동시에 근로자에게는 정년 이후에도 일정한 소득이 보장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정년퇴직자의 촉탁직 재고용에 대하여는 대법원 2017.2.3. 선고 2016두50562 판결의 판단 법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정년퇴직자의 촉탁직 재고용에 대하여는 기간제 근로의 갱신기대권의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본다면, 정년퇴직자 등 고령자의 근로계약에 대한 갱신기대권 법리가 적용될 여지는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대법원 2017. 2.3. 선고 2016두50562 판결은 정년을 이미 경과한 상태에서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에 갱신기대권 법리가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밝힌 것으로, 이미 기간제 근로계약이 체결된 경우에 적용될 수 있고, 정년퇴직 이후 최초 기간제 근로계약이 체결되는 경우에 적용되는 것을 예정한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정년퇴직자의 촉탁직 재고용과 관련해서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판단해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선, 취업규칙 또는 단체협약에서 정년에 도달하여 당연퇴직하는 경우에 업무상 필요가 인정되는 경우에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재고용 또는 촉탁직으로 고용할 수 있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촉탁직 재고용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고령자고용법) 제21조 제1항에서는 “사업주는 정년에 도달한 자가 그 사업장에 다시 취업하기를 희망할 때 그 직무수행 능력에 맞는 직종에 재고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노력의무를 부과하고 있고, 고령자고용법 제21조의3 제1항에서는 “사업주는 정년퇴직 등의 사유로 이직예정인 고령자의 구직활동을 지원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여 퇴직예정자 등의 구직활동지원에 대한 사용자의 노력의무만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개별적으로 촉탁직 재고용에 대한 약속을 하거나 정년퇴직자에 대한 촉탁직 재고용에 대한 의무규정으로 해석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용자가 정년퇴직자에 대해 업무상 필요성이 있는 경우 재고용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경우 이는 사용자의 재량규정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의 정년퇴직자에 대한 촉탁직 재고용 규정이 회사로 하여금 재량의 여지 없이 그 근로자를 촉탁근무의 형식으로 1년간 더 근무하게 할 의무를 부담케 하는 의무규정으로 해석되는 경우에는 정년 후 촉탁직 재고용 규정의 취지에 위배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정년 이후에 촉탁직으로 재고용되는 관행이 형성되어 사실상 제도로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 촉탁직으로 재고용하지 않은 것은 정당성이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행이 성립되었는지 여부는 사용자의 행위가 반복된 횟수, 기간 등 제반사정을 고려하여 노사당사자가 관행이라 규범적으로 인정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김기선(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