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이 사건 협력업체들이 단체협약에 따라 지급한 정기상여금은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갖춘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다음, 이 사건 청구가 신의칙에 위반되는지 여부와 관련하여 이 사건 협력업체들이 작성해 제출한 표준재무제표를 기준으로 판단한 결과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하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
즉, ①A회사는 소사장제를 통하여 제조를 업으로 하는 일종의 노무도급 중심의 업체인 점, ②표준재무제표 상 2012년도부터 2013년도까지 당기순이익이 발생한 점, ③2014년도 및 2015년도의 일시적인 수익성 하락이 반드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없는 점, ④노무도급 중심 업체로서 금융권을 통한 추가 재원 조달확보가 불가능하지 않은 점, ⑤이 사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소속 근로자들에게 각종 법정수당을 지급한 후, 이를 전제로 추후 기아차와 추가도급비용 협상이 가능한 점, ⑥「근로기준법」을 준수하여 산정한 통상임금을 기초로 각종 법정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원칙인 점, ⑦부채가 많다고 하여 반드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봉착한다고 볼 수 없는 점, ⑧A회사가 주장하는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은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추가 법정수당의 지급에 기인한 것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책임을 소속 근로자들에게 전적으로 부담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점, ⑨비록 2015년도 유동비율이 약 30%이나, 소속 근로자들이 45명에 불과하여 그 숫자가 적은 점, ⑩A회사가 추가 법정수당의 일시 지급으로 인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면, 추후 소속 근로자들과 분할지급 등 체불법정수당의 지급방법에 관한 협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들의 추가적인 법정수당 청구가 A회사의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려운바, A회사의 신의칙 위반 주장은 이유 없다.
대상판결은 신의칙 위반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던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제1심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17.8.31. 선고 2011가합105381 등 판결)과 연장선에 있는 기아차 사내협력업체의 통상임금에 관한 다툼이다.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피고는 기아차가 운영하는 화성 등 각 공장의 사내협력업체(이하, 협력업체)들이며, 원고는 협력업체들에 소속되어 각 공장에서 자동차 생산 및 기타 업무에 종사해 온 근로자들이다. 협력업체를 대표한 기아차 사내협력사 교섭위원대표와 전국금속노조 기아차지부(원고들을 포함한 피고들 소속 근로자를 대표하여 단체교섭 할 권한을 가진 노동조합)와 연 600%의 상여금 지급 그리고 상여금은 결근, 휴직, 지급일 이전 퇴사자에 대하여는 일할 계산하여 지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2010년, 2012년, 2014년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
협력업체들은 정기상여금을 제외하여 통상임금을 산정하고, 이를 기초로 산출한 금액을 근로자들에게 시간외근무수당, 야간근무수당, 휴일근무수당 및 연차휴가수당 등으로(이하, 각종 법정수당) 지급하였다. 또한 협력업체들은 근로자들에게 퇴직중간정산금을 지급하면서, 정기상여금을 제외하고 산정한 각종 법정수당을 기초로 근로자들의 퇴직금중간정산 이전 3개월 동안의 평균임금을 산출하였다. 이에 근로자들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므로 협력업체는 근로자들에게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재산정한 각종 법정수당 중 미지급분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이 소속된 협력업체들을 상대로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하였다. 한편 협력업체들은 단체협약에서 정한 바에 따라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각종 법정수당을 지급하였고, 근로자들이 위 합의가 「근로기준법」에 위배되어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미지급 법정수당 지급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고 주장하였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 적용에 관한 법리를 처음으로 정립한 것은 대법원 2013.12.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다수의견은 ‘노사합의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한다고 하여 그 노사합의의 무효 주장에 대하여 예외 없이 신의칙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며, ①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을 갖춤은 물론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에도 불구하고, ②신의칙을 우선하여 적용하는 것을 수긍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그 노사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말하는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일반적인 요건’이란, (1)상대방에게 신의를 공여하였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신의를 가지는 것이 정당한 상태에 이르러야 하고, (2)이와 같은 상대방의 신의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 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이다. 또 추가로 법정수당을 청구하는 것이 신의칙에 위배되어 인정될 수 없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여야 하며, 그 특별한 사정이란, ①임금협상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노사합의에서 정기상여금은 그 자체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오인한 나머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 산정 기준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전제로 임금수준을 정한 경우, ②근로자 측이 앞서 본 임금협상의 방법과 경위, 실질적인 목표와 결과 등은 도외시한 채 임금협상 당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사유를 들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가산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법정수당의 지급을 구한 경우, ③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 ④그로 말미암아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신의칙 적용과 관련한 기준이 객관적으로 명확하다고 할 수 없어 실무상 구체적인 신의칙 적용에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 위반 여부에 대하여 법원은 (1)우선 상대방에게 신뢰를 제공하였다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상대방이 신뢰를 하는 데 정당한 상태에 있고, 상대방의 신뢰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등 신의칙 요건을 검토하고, (2)근로자들이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추구하는지, (3)회사의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초래’ 또는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인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보면, ①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합의가 존재하는지(신의칙 요건), ②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산입할 경우의 통상임금 액수의 인상률, ③회사가 새로이 부담하게 될 법정수당의 총액(장래 잠재적으로 부담할 총액 고려), ④정기상여금을 포함하여 법정수당을 계산할 경우의 총 연봉 기준 임금인상률, ⑤근로자들의 야간, 연장, 휴일근로 현황, ⑥회사의 현금보유 현황, 회사의 영업손실, 부채비율, ⑦동종 업계의 현황 및 수익구조 개선의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특히 회사의 당기순이익,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법정수당의 추가 부담액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신의칙 적용을 부정하는 것을 보면, 법원은 통상임금 소송에서 회사의 재정 상황을 신의칙 적용의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대상판결이 신의칙 적용에서 사내협력업체 자체의 재정 상황을 중시한 점은 동일하지만, 금융권을 통한 추가 재원 확보 가능성, 추가 법정수당의 분할지급에 관한 노사합의 가능성을 들어 추가지급능력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나아가 추후 원청인 기아자동차와의 도급비용 재협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부정하는 근거로 삼았다.
정리하면, ①사내협력업체는 노무비용이 제조비용의 약 90%에 이르는 노무도급의 성격을 띠는 업체인 점, ②표준재무제표상 당기순이익이 발생한 점, ③노무비용 증가에 대하여 추후 원청인 기아차와 추가 도급비용 협상이 가능한 점 등에서 신의칙 위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대상판결은 사내협력회사 자체의 재정 상황뿐만 아니라 노무도급업체로서 원청과 추가 도급비용 협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원청까지 포함하여 추가지급능력을 고려한 점이 특징이다. 달리 말하면, 원청이 하청근로자의 임금인상에 대한 추가비용을 부담할 의무가 있고, 원・하청 사업주는 이를 위하여 협상에 임하여야 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노사 간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상헌(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