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요지]
원고의 기망으로 체결된 이 사건 근로계약은 그 하자의 정도나 원고의 근무기간 등에 비추어 하자가 치유되었거나 계약의 취소가 부당하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의 취소의 의사표시가 담긴 반소장 부본의 송달로써 적법하게 취소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러나 그 취소의 소급효가 제한되어 이 사건 근로계약은 취소의 의사표시가 담긴 반소장 부본 송달 이후의 장래에 관하여만 그 효력이 소멸할 뿐 위 반소장 부본이 원고에게 송달되기 이전의 법률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와 달리 원심은, 이 사건 근로계약이 원고의 기망으로 체결된 것으로서 피고의 취소의 의사표시에 의해 적법하게 취소되었고 그 취소로 인해 장래에 관하여만 계약의 효력이 소멸할 뿐이라고 하면서도, 이는 근로자가 현실적으로 노무를 제공한 경우에 한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노무를 제공하지 않은 기간에 대하여는 소급적으로 계약의 효력이 소멸한다는 그릇된 전제에서 원고에 대한 해고 통지 이후로서 위 취소의 의사표시 이전의 부당해고 기간 동안에는 현실적인 노무의 제공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위 기간에 대하여는 소급적으로 계약의 효력이 소멸하여 근로관계의 존속을 전제로 한 임금 지급을 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근로계약 취소의 소급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근로자인 원고가 이력서에 일부 허위 경력을 기재한 것이 문제되어 해고되었으나 이것이 부당해고로 확정되어, 근로자가 추후 부당해고 기간 중의 미지급 임금을 청구하였고(이하 이 사건), 이에 피고 사용자는 미지급 임금 지급의 책임이 없다고 다투려는 취지에서 이 사건 제1심 소송계속 중 근로계약에 대한 취소의 의사표시가 기재된 반소장을 제출하였다. 사안에서는, 원고가 부당해고 기간 동안에 실제로 근로를 제공한 바는 없었기 때문에 만일 피고 측에서 사기에 의한 의사표시 취소 규정(「민법」제110조 제1항)에 근거하여 근로계약을 취소한 경우, 근로관계 계속은 의제되지만 실제 근로제공은 없었던 부당해고 기간 동안의 미지급 임금에 대해서도 사용자의 지급의무가 소급적으로 소멸하는 것인지가 문제되었다.
일반적으로 민사상 계약에서 취소의 의사표시는 소급효를 가지기 때문에 계약의 효력은 계약 체결 당시로 돌아가서 무효가 되고 양 당사자 사이에서는 만약 서로 주고받은 것이 있다면 부당이득 반환의 법리로 처리하게 된다. 그렇지만 근로계약의 경우 그러한 일반적인 법리를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 그 이유에 대해 故 곽윤직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고용계약은 일시적 계약인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계속적 계약이다. 특히 근로계약은 언제나 계속적 계약으로서 성립하게 된다. 이러한 계속적 계약으로서의 고용이나 근로계약에 의한 채무(노무급부의무)가 이행되기 전에, 계약이 무효․취소된 경우에는, 그 계약을 소급적으로 실효케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근로자가 이미 노무를 제공하고 있는 경우에, 계약에 어떤 흠이 있다하여 소급적으로 실효케 한다면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 전통적인 이론에 의한다면 당사자 사이에서는 부당이득에 의한 반환청구권을 기초로 처리하게 되나, 많은 경우에 실제에 있어서는 그러한 처리는, 적당하지 못하거나 또는 법률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어, 결코 합리적인 해결이 되지 못한다. 만일에 이 경우에, 당사자 사이에서는 사실적 행위에 의하여 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보고, 무효․취소의 소급효를 제한하거나 부인한다면, 그러한 부당한 결과는 이를 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계속적인 고용계약 및 근로계약에 관하여는 이들 계약이 가지는 사회적 의의의 중요성에 비추어 사실적 계약관계론을 적용하여 이미 제공된 노무관계에 관하여는 마치 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하였던 것과 같이 다루어서 처리하고 무효 또는 취소의 주장은 해지와 같은 효력을 가질 뿐이라고 새기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만약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근로자가 부당해고된 기간 동안에 실제로 근로제공이 없었다는 이유로 사용자가 행한 근로계약 취소의 효과를 근로자가 해고된 시점까지 소급하는 것으로 처리하게 되면 그 전에 이미 부당해고로 확정된 판결의 기판력과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즉 부당해고로 확정된 판결의 효과에 따라 해고 시점 이후에도 근로관계가 계속된 것으로 인정되는 효과를 취소의 소급효로 뒤엎는 모순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도 사용자의 취소 주장은 소급효가 인정되는 본래적 의미의 취소가 아니라 해지의 효력을 가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근로관계에서 근로계약 취소의 소급효를 인정하는 경우 예기치 못한 불합리가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종전의 해고가 부당해고로 확정된 만큼, 해고 시점과 사용자의 근로계약 취소의 의사표시 도달 시점 사이의 기간 동안 실제로 근로제공은 없었더라도 근로관계는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므로, 근로관계의 종료는 취소의 의사표시 이후에만 인정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부당해고 기간 중의 임금에 대한 사용자의 지급책임이 인정된다는 대상판결의 판단은 민사상 계약 취소의 법리와 근로계약 관계의 특수성을 조화롭게 고려한 것이라 하겠다.
노호창(호서대 법경찰행정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