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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건조치의무의 해석 방식

  1. 대법원 2021-09-30 선고, 2020도3996 판결
  2. 저자 전형배
【판결 요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하였는지는 산업안전보건법 및 같은 법 시행규칙에 근거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의 개별 조항에서 정한 의무의 내용과 해당 산업현장의 특성 등을 토대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입법목적, 관련 규정이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조치를 부과한 구체적인 취지, 사업장의 규모와 해당 사업장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의 성격 및 이에 내재하여 있거나 합리적으로 예상되는 안전보건상 위험의 내용, 산업재해의 발생 빈도, 안전보건조치에 필요한 기술 수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 규범 목적에 부합하도록 객관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나아가 해당 안전보건규칙과 관련한 일정한 조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해당 산업현장의 구체적 실태에 비추어 예상 가능한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안전조치에 이르지 못하면 안전보건규칙을 준수하였다고 볼 수 없다. 특히 해당 산업현장에서 동종의 산업재해가 이미 발생하였던 경우에는 사업주가 충분한 보완대책을 세움으로써 산업재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안전보건규칙에서 정하는 각종 예방 조치를 성실히 이행하였는지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대상판결은 노동절인 2017.5.1. 발생한 S중공업 거제조선소의 중대재해를 다루고 있다. S중공업 거제조선소는 해상구조물의 일부인 ‘마팅링게 프로세스 모듈’을 제작하고 있었다. 모듈의 제작에서는 이동식 대형 골리앗 크레인과 고정식 소형 지브크레인을 사용하였다. S중공업 거제조선소의 현장 반장은 2017.5.1. 오후 2시 30분경 애초 오후 5시로 예정되었던 엘리베이터 운반 작업을 하고자 골리앗 크레인을 이동시켰다. 그 과정에서 골리앗 크레인의 이동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던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운영하던 지브크레인이 골리앗 크레인과 충돌하여 쓰러지면서 흡연실과 화장실을 덮쳤다. 이 사고로 여러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중상해를 입었다.

검사는 S중공업과 협력업체를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로 기소하면서 위반행위자로 S중공업은 조선소 소장을 특정하고, 협력업체는 대표이사를 특정하였다. 그러나 제1심은 2015년 S전자 불산누출 사고 판결(대법원 2018.10.25. 선고 2016도11847 판결)의 취지에 따라 위 사람들은 안전조치에 관한 구체적ㆍ직접적 의무를 부담하지 않으므로 무죄라고 판단하였고, 항소심 법원은 위 2018년 판례를 언급하지 않고 대상판결에서 대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안전보건조치의무를 피고인이 위반한 사실이 없다고 보아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원심이 인정하지 않았던 세 가지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인정하였는데 그것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이하 ‘안전보건규칙’) 제38조 제1항 제11호 및 별표 제4호(①번 의무), 제40조 제1항 제1호(②번 의무), 제14조 제2항(③번 의무)이다. 세 가지 의무를 정리하면 ①번 의무는 ‘중량물의 취급 작업’을 하는 경우 근로자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추락위험, 낙하위험, 전도위험, 협착위험, 붕괴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안전대책을 포함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그 계획에 따라 작업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의무이고, ②번 의무는 크레인 등 양중기를 사용하는 작업을 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할 수 있도록 일정한 신호 방법을 정하여 신호하여야 할 의무이며, ③번 의무는 물체가 떨어지거나 날아올 위험이 있는 경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출입금지구역의 설정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할 의무이다. 원심법원은 세 가지 의무가 조선소에서 크레인이 충돌할 때도 적용된다는 명확한 규정이 아니라는 취지의 판단을 하였다.

이런 명확성 논증에 대하여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해석론을 전개하였다. “이 사건 산업현장은 수많은 근로자가 동시에 투입되고, 다수의 대형 장비가 수시로 이동 작업을 수행하며 육중한 철골 구조물이 블록을 형성하여 선체에 조립되는 공정이 필수적이어서 대형 크레인이 상시적으로 이용되고, 사업장 내 크레인 간 충돌 사고를 포함하여 과거 여러 차례 다양한 산업재해가 발생한 전력이 있는 대규모 조선소이다. 이러한 사업장의 특성을 토대로 산업안전보건법과 시행규칙 및 개별 안전보건규칙에서 정한 의무의 내용과 취지 등을 살펴보면, 사업주인 S중공업과 조선소장에게는 해당 규정에 따라 크레인 간 충돌로 인한 산업안전사고 예방에 합리적으로 필요한 정도의 안전조치 의무가 부과되어 있다고 해석된다.”

대법원의 논증을 거칠게 요약하면 성실한 사업주라면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고려하여 안전보건규칙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안전보건대책을 세우고 실행하라는 것이다. 조선소는 대표적인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이고, 피고인 S중공업이 운영하는 조선소 내에서도 과거 다양한 산업재해가 발생한 전례가 있으므로 시시콜콜 안전보건규칙의 형식적 문리해석을 하며 안전보건조치의무가 없다고 따질 것이 아니라 산업재해를 줄이려는 적극적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형식은 평이하지만 그 내용은 준엄한 문장으로 결론을 내린다. “안전보건규칙에서 정하는 각종 예방 조치를 성실히 이행하였는지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

대상판결은 그간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면서 안전보건규칙의 형식적 문언에 집착하여 조금이라도 벗어날 구석이 있으면 이를 확대해석하여 범죄혐의로부터 달아나려는 변론전략에 대한 엄중한 신호를 담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는 그 성질상 형사 범죄이므로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 특히 명확성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사업장의 작업 방식과 그에 대응하는 안전 기술을 법령에 바로바로 성문화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과학기술법이자 행정규제법 영역에서는 무엇보다 수범자의 신의와 성실에 바탕을 둔 법령 준수 의지가 필요하다. 웬만한 아파트 한 동보다 더 거대한 대형 크레인이 충돌할 때 생길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려는 조치는 조선소를 운영하는 사업주라면 당연히 고려하여야 할 사항이다. 법령에 그 규정이 없다거나 혹은 있더라도 미세하게 불충분하다는 이유를 들어 해당 법령을 이행하지 않아도 위법은 아니라는 식의 태도를 누가 두둔하겠는가? 대상판결은 이런 면에서 향후 산업안전보건법령을 해석하는 방향에 대한 중요한 지침이 된다. 다만, 필자는 한 가지 의문이 여전히 든다. S전자 불산누출 사고를 다룬 2018년 대법원 판례는 돌출 판결이었던가? 왜냐하면 이후 동종 사건에서 2018년 대법원 판례는 선례로서 더는 언급되지 않으며 그 이전 판례를 살려내어(대법원 2010.11.25. 선고 2009도11906 판결 등) 조선소장 등 상위관리자 혹은 임원의 죄책을 판단하면서 주관적 요건은 미필적 고의로 족하다는 판단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대표적으로 H반도체 회사 판결, 대법원 2021.3.11. 선고 2018도10353 판결). 재판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의외의 부분이 없을 수 없지만 그런 돌출 판결은 사업주와 감독행정을 하는 행정부에 엄청난 부정적 영향을 준다. 약 3년 사이에 대법원 판단이 법리구성과 산업안전보건 형사정책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정리하면 너무 성급한 평가일까?

 

전형배(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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