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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상 스트레스 자살의 업무상 재해 인정

  1. 서울행정법원 2020-08-21 선고, 2019구합63164 판결
  2. 서울행정법원2020-09-18 선고, 2019구합62826 판결
  3. 저자 양승엽
【판결요지】
근로자가 자살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경우에 업무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하거나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그 질병의 주된 발생원인에 겹쳐서 질병이 유발 또는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을 때에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그 과정에서 망인의 내성적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사안 1) 망인 A는 게임회사의 게임 배경 디자이너로 게임 출시를 앞두고 야근을 하다가 퇴근하던 도중 회사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병원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고, 외래로 공황장애 등에 대한 치료를 받았다. 그 후 출시한 게임의 실패로 회사가 어려워지자 망인은 회사를 그만두었고, 한 달여 후 망인은 자택에서 자살하였다. 평소 망인은 개인적인 사유로 인한 우울감, 무기력감, 불면증세를 겪었으며, 엘리베이터 갇힘 사건 전 지하철에서 갑자기 두근거림, 어지러움,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 적도 있었다. 망인의 부모인 원고는 근로복지공단에 망인의 자살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신청하였고, 근로복지공단은 망인의 자살이 업무상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청을 거부하였다(서울행정법원 2020.8.21. 선고 2019구합63164 판결).

(사안 2) 망인 B는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아파트를 순찰하고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업무를 맡았다. 입주민 C로부터 2년간에 걸친 지속적인 민원을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C는 망인에게 삿대질하고 윽박지르는 행동 등을 하였다. 윽박지름 사건 후 망인은 회사 대표에게 민원이 해결되지 않아 힘들어 그만두고 쉬고 싶다는 취지로 이야기하였고 이틀 후 인근 산책로에서 자살하였다. 윽박지름 사건 전 망인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고 상담 중 부동산 투자 실패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토로하였다. 망인은 정신건강의학과로부터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 비기질성 불면증’을 진단받았다. 망인의 배우자인 원고는 근로복지공단에 망인의 자살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신청하였고, 근로복지공단은 망인의 자살이 업무상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청을 거부하였다(2020.9.18. 선고 2019구합62826 판결).

 

자살(자해를 포함)은 자신의 의지(자유의지)에 의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자살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으며 다른 원인은 원칙적으로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 업무 스트레스로 자살을 한다고 하더라도 자살은 스스로의 선택이기 때문에 업무상 스트레스는 자살의 원인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자살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이라 함) 제37조 제2항은 “근로자의 고의ㆍ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부상ㆍ질병ㆍ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자살은 고의행위로서 업무상 재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동 조항은 단서로 예외 사유를 적시한다. “다만, 그 부상ㆍ질병ㆍ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낮아진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 재해로 본다”라는 것이다. 즉, 사려분별을 하지 못하는 정신능력에서 행한 자살은 자신의 자유의지일 수가 없기에 단절된 인과관계가 부활하는 것이다. 산재보험법 시행령 제36조는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낮아진 경우를 다음 세 가지로 열거한다.

 

①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②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③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하였다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세 가지 경우를 보면, 법조문이 규정하고 있는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낮아진 상태’란 다름 아닌 ‘정신적 이상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망인은 정신적 이상 상태에 빠져 있어야 한다.

사안1과 사안2에서 행정법원은 모두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을 때에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라고 한 것은 바로 위와 같은 법리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자살의 원인이 업무와 관계된 것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때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사안1의 경우 망인의 공황장애는 그 전부터 소인이 있었고, 사안2의 경우 망인은 직전 다른 사유로 인한 우울증세를 호소하였다. 이렇게 인과관계가 경합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행정법원은 대법원 2019.5.10. 선고 2016두59010 판결을 원용하며 “그 과정에서 망인의 내성적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였다.

따라서 행정법원은 사안1에서 “망인이 자살 행위로 사망하였다고 하더라도 망인은 업무상 재해인 이 사건 사고(엘리베이터 갇힘 사건)로 인하거나 위 사고에 업무상 스트레스가 경합하여 망인에게 내재되어 있던 공황장애의 소인이 급격하게 공황장애로 악화되었고 이로 인하여 망인이 정상적인 행위선택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을 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다. 따라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라고 하여 망인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였다.

사안2 역시 행정법원은 “망인은 입주민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민원 제기로 인한 업무상 스트레스가 개인적인 경제적 문제와 정신적 취약성 등의 요인에 겹쳐서 우울증세가 유발 및 악화되었고, 그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었거나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망인의 사망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라고 하여 망인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였다.

행정법원의 두 판결은 산재보험법의 법문과 대법원의 선례를 충실히 따른 것으로 타당하다. 인과관계의 경합에 있어서 업무상 스트레스가 기존의 질병(공황장애 또는 우울증)을 악화시켰다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으며, 망인의 개인적인 취약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여전히 업무와 공동의 인과관계를 이루는 이상 업무와 자살 간의 상당인과관계가 부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법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위 두 사안의 경우 망인들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기록이 남아 있어 쉽게 정신적 이상 상태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기록이 없거나 급격한 스트레스 발생으로 순간적으로 자살을 한 경우 현실적으로 정신적 이상 상태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자살은 모두 정신적 이상 상태라고 할 수도 없다. 정신적 이상 상태로 자살의 자유의지를 없애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부활시키는 복잡한 방법이 아닌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에서 자살은 수단일 뿐이고 업무상 스트레스가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이론을 구성할 수는 없을까?

이에 표본으로 삼을 만한 선례가 있다. 대법원은 2017.4.27. 선고 201655919 판결에서 야식비의 용도를 두고 물리적인 싸움을 하던 도중 급성 심장사로 사망한 사안에서 망인의 사망은 폭력이 매개되었지만, “직장 안의 인간관계 또는 직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이 현실화되어 발생한 것으로서 업무와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하였다. 즉, 싸움이라는 자유의사에 따른 결과물로 사망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원인이 직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라면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살도 그 원인이 직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되는 위험(예: 고객에 의한 괴롭힘)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면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하여야 한다. 따라서 정신적 이상 상태가 없는 경우에도 자살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어야 한다.

 

양승엽(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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