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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신기대권과 갱신 거절의 합리성

  1. 서울고등법원 2020-01-09 선고, 2019누49986 판결
  2. 저자 노상헌

【판결요지】
근로자에게 이미 형성된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이를 배제하고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한 데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가 문제될 때에는 사용자의 사업 목적과 성격, 사업장 여건, 근로자의 지위 및 담당 직무의 내용, 근로계약 체결 경위, 근로계약의 갱신에 관한 요건이나 절차의 설정 여부와 그 운용 실태, 근로자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지 여부 등 당해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갱신 거부의 사유와 그 절차가 사회통념에 비추어 볼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공정한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그러한 사정에 대한 증명책임은 사용자가 부담한다.

 

갱신기대권의 법리를 살펴본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의 제정으로 현재는 효력을 상실한 근로계약 기간에 관한 근로기준법을 보면, ‘근로계약은 기간을 정하지 아니한 것과 일정한 사업의 완료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것 외에는 그 기간은 1년을 초과하지 못한다.’(제16조)고 규정하였다. 이 규정에 따르면, 근로계약은 ①기간의 정함이 없거나, ②일정한 사업의 완료까지 정하거나, ③1년 이내로 정하여야 한다. 근로계약 기간을 강행규정으로 정한 법의 취지는 장기계약에서 생길 수 있는 인신구속의 폐해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예컨대 ①의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경우, 근로자는 사직의 자유로서 언제든지 근로관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②의 일정한 사업의 완료까지 근로계약 기간을 정하면, 노사 당사자는 근로계약의 종기를 예측함으로써 불측의 피해를 줄일 수 있으며, ③의 1년 이내 기간 설정은 장기계약에서 우려되는 근로자의 구속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법의 취지를 사용자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①의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경우, 사용자에 의한 해고는 제한됨으로써 근로계약관계 해소에는 ‘정당한 이유’ 입증이라는 시간과 비용이 들고, ②의 일정한 사업의 완료까지 근로계약을 정하면, 사용자는 근로자의 일방적 사직에 따르는 불측의 피해를 줄일 수 있으며, ③의 1년 이내 단기간 근로계약을 체결하면 필요에 따라 갱신할 수 있는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법규정의 이해에서 사용자는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면서 해고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긴장관계를 회피하는 방책으로 ‘기간제 고용’을 다양하게 활용하였다. 즉 근로기준법은 명시적으로 1년 이내의 계약이라면 반복·갱신 횟수 및 총 근로기간을 제한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사용자는 기간제 근로계약을 이용하여 해고법리를 피하면서 고용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었다. 이를 기간제근로자의 입장에서 보면, 계약기간 만료에 즈음하여 사용자의 일방적 근로계약 종료통보(이른바 관념의 통지)로 고용이 종료(실질적으로는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정한 지위에서 자신의 노동법상 권리조차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는 열악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불합리한 기간제고용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간제법이 2007.7.1. 시행되었다.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의 다수를 차지하는 기간제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차별적 처우를 시정하고, 근속기간 2년 초과 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으로 전환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기간제법 시행 전까지는 기간제근로자의 고용보호는 법원의 해석에 맡겨졌다. 대법원은 ‘기간제 근로계약은 그 정해진 기간이 만료함에 따라 사용자의 해고 등 별도의 조치를 기다릴 것 없이 당연히 종료되는 것이 원칙이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기간을 정하여 채용된 근로자라 할지라도 장기간에 걸쳐서 그 기간의 갱신이 반복되어 그 정한 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게 된 경우는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의 경우와 다를 바가 없게 되는 것이고, 그 경우에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갱신계약의 체결을 거절하는 것은 해고와 마찬가지로 무효로 본다는 법리를 형성하였다(대법원 1994.1.11. 선고 93다17843 판결). 그러나 기간제 근로계약이 사실상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비판으로부터 법리의 확장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후 대법원은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사건 판결에서 ‘재임용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을 처음으로 인정하여 ‘갱신기대권’ 법리를 형성하였고(대법원 2005.7.8. 선고 2002두8640 판결), 서울특별시시설관리공단 사건 판결(대법원 2011.4.14. 선고 2007두1729 판결)을 통해 갱신기대권 법리를 정립하였다.

대법원이 정립한 갱신기대권 법리는 다음과 같다. ⑴근로계약,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에서 기간 만료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해당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거나, ⑵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근로계약의 내용과 근로계약이 체결된 동기 및 경위, 계약 갱신의 기준 등 갱신에 관한 요건이나 절차의 설정 여부 및 그 실태, 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등 해당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근로계약 당사자 사이에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에 갱신기대권이 인정되며, 갱신기대권의 존재에 대한 증명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근로자가 부담한다. ⑶ 정당한 갱신기대권에 대한 사용자의 갱신 거절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사회통념상 상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합리적 이유가 필요하지만, ‘합리적 이유’의 범위는 근로기준법 제23조 부당해고의 기준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고, 갱신 거절의 이유가 되는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은 사용자가 증명책임을 부담한다.

대상판결의 사실관계이다. 점토벽돌을 제조·판매하는 A사 서울사무소 영업팀에서 근무하던 원고 근로자 갑(이하 ‘갑’)은 매출부진으로 인한 서울사무실 폐쇄 등의 이유로 2017.12. 회사로부터 사직 권고를 받았다. A사는 ‘매출부진 사유로 서울사무실을 폐쇄하기로 하였고, 본의 아니게 사직을 권고하며 근로 재계약을 하지 못하게 됨을 알려드린다’고 통지하였다. 이에 갑은 A사의 갱신 거절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였고(중앙2018부해403), 기각되어 소송을 제기한 사안이다.

갱신기대권 법리에 따라 대상판결은 ⑴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계약기간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여 실질적으로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 ⑵계약기간의 정함이 있는 경우 계약기간 만료 후에도 근로계약이 갱신될 것이라는 기대권이 인정되는지 여부, ⑶갱신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 갱신 거절의 합리성이 있는지 여부를 차례로 검토하였다.

첫 번째 쟁점에 대하여, 처분문서인 근로계약서를 3번 작성하면서 1차 근로계약서는 계약기간을 2016.6.13.부터 2017.6.12.까지로, 2차 근로계약서는 2017.1.1.부터 2017.12.31.까지로, 3차 근로계약서는 2017.4.1.부터 2017.12.31.까지로 각각 정하여 그 문언에 명확하게 기간을 정한 점, 회사가 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서(월급제)와 계약기간을 정한 근로계약서(연봉제)를 구분하고 있는 점, 갑이 담당하는 영업 업무는 영업실적에 따라 계약 연장 여부를 결정하여 탄력적으로 인력을 운영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점 등을 들어 근로계약서상 계약기간이 형식에 불과하다는 갑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두 번째 쟁점에 대하여 대상판결은 근로계약서에서 ‘상호간 특별한 이의사항이 없으면 본 연봉계약의 효력 및 변경사항은 자동으로 연장 및 적용된다’고 규정한 점, 영업 직무 근로자의 경우 근로기간을 정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한 후 계약 만료 시 영업실적, 근태현황을 고려하여 재계약 여부를 결정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았을 때 A사와 갑 사이에는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므로 갑에게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다는 정당한 기대권이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세 번째 쟁점은 사용자의 갱신 거절에 대한 합리적 이유의 존부이다. 이에 대하여 대상판결은 갑의 영업실적이 다른 영업사원들과 비교해 실적이 매우 저조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하기 부족하고, 반면 갑이 담당하는 영업업무에 대하여 채용을 공고한 점, 갑의 근태가 정확했고 직원들과의 관계도 좋았다는 점 등을 들어 갱신 거부의 사유와 절차가 사회통념에 비추어 볼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대상판결의 특징은 일정한 실적이 요구되는 연봉제 영업직 근로자에 대하여 단지 ‘영업실적 저조’라는 이유만으로 갱신을 거부하는 것은 합리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확인한 점이다. 요컨대 ‘영업실적 저조’가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사용자가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노상헌(서울시립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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