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1919년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창립된 해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열린 파리 강화회의에서 채택된 베르사이유 평화협정의 제13장이 바로 「ILO 헌장」이다. 왜 노동문제를 다루는 국제기구의 설립 헌장이 종전 후 국제질서를 재정초하기 위한 평화협정 속에 들어갔을까? 그것은 ILO 헌장이 스스로 밝히고있다.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라는 것. 이 말은 1차 대전의 원인이 사회적 불평등과 불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회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인식은 과대망상이 아니라, 경험에 근거를 둔 이성적 판단이었다는 것이 불행하게도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그래서 1944년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채택된 「국제노동기구의 목적에 관한 선언」(필라델피아 선언)은 이렇게 천명한다.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선언한 국제노동기구 헌장의 정당성은 경험에 의하여 완전히 증명되었다고 확신한다.”
2차 대전 후의 국제질서는 바로 이 사회정의의 정신 위에 재정초된다. 1948년에는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었다. 선진산업국가들은 복지국가를 건설했다. 노동하는 자의 권리는 강화되었고, 사회보장제도는 확대되었다. 불평등은 완화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사태는 반전되기 시작했다. 실업은 증가하고, 임금은 정체되었으며, 해고는 일상화되었고, 비정규직은 확대되었다. 노동조합은 힘과 지혜를 잃어 갔고, 기업의 힘은 전방위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불평등과 불의가 다시 심화되고 있다. 경제정책과 금융정책은 언제나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할 뿐, 모든 인간이 차별 없이 자유와 평등과 존엄과 안정 속에서 자신의물질적 진보와 정신적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이것은 ILO 헌장과 필라델피아 선언이 천명했던 정신과 정반대의 상황이다.
그러므로 사회정의의 현재적 가치를 되살리는 것이 긴요하다. 그러나 사회정의는 단순히 임금을 올리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정의는 ‘진정으로 인간적인 노동체제’를 확립하는 차원으로 지평을 열어야 한다.
인간적인 노동이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노동을 이행하는 조건이 인간적이어야 한다. 적정임금, 고용보장, 보편적 사회보장, 집단적 자유권의 실질적 보장 등이 그 내용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