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사내하도급이 중요한 사회적, 법률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도급인(원사업주)-수
급인(하도급 사업주)-수급인의 근로자(하도급 근로자)> 사이에 근로자공급 또는 근로자파견과 유사한 노동관계, 즉 수급인의 근로자에 대해서 도급인
이 일정한 지휘명령권 또는 강한 지시권을 행사하는 관계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른바 “간접고용”의 문제 또는 더욱 정확하게는 삼면적 노동관계의
문제이다.
그러나 사내하도급은 그 자체로 실체적 법률 관계를 갖는 법률적 개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현상-노동력 사용에 관한 특별한 방식을 둘러싼 현상-을 설
명하는 사회학적 용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따라서 그 자체로 적법하다 위법하다 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내하도급이 위법한 경우와 적법한
경우를 구별하여 각각 그 법률 효과 및 규율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 사내하도급의 위법성/적법성을 구별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도급인의 지휘명령권 행사 여부이다. 왜냐하면 우리 노동법 체계상 타인을 지휘?명령하여 근로에 종사하도록 할 수 있는 권한은 근로계약, 근로
자파견 및 근로자공급의 경우에만 주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아니한 사내하도급 관계에서 지휘명령권이 행사된다는 것은 관련 법령 위반
이 되기 때문이다. 즉, 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도급인의 지휘명령권이 행사되면 위법이 된다. 이러한 원칙을 보충하기 위한 하위 기준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업무의 전문성/일반성 기준이다. 사내하도급으로 수행되는 업무가 도급인의 일반적 영업 활동과 엄격히 구분되고 도급인에게
는 필요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노하우가 결합되어 있는 경우에만 적법한 사내하도급으로 인정된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하도급 근로자에 대해서 도급인
이 지휘명령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추정을 강하게 할 수 있다. 둘째, 업무의 일시성/상시성 기준이다. 사내하도급을 한 업무가 도급인의 사업에서 상
시적으로 행해지는 업무인 경우에는 도급인의 지휘명령권이 행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하도급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의 존립 기반을 이루
는 중추적인 근로자 집단에 밀접하고 상시적으로 속해 있는 경우에는 해당 사업의 성패를 위해서는 그 하도급 근로자에 대해서 도급인이 엄격한 지휘명
령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하게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위법한 사내하도급의 규제 법리로는 크게 묵시적 근로계약 법리와 불법파견 법리가 있다. 우선, 묵시적 근로계약 법리는 대법원에서 몇 번 인정된 적
이 있는 법리이고 법률적 효과가 가장 큰 법리이기는 하지만, 수급인의 사업 실체성 여부에 중점을 두고 판단하는 법리라는 점에서 결정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 법원이 생각하는 수급인의 실체란 온전한 실체가 아니라 약간의 실체이며, 수급인에게 그 약간의 실체만 있으면 비록 하도
급 근로자와 도급인 사이에 종속 관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근로계약 관계는 부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불법파견 법리는 위법한 사내하도급
은 실체상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데 파견법의 요건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파견이고 파견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법파견 법리
는 파견법의 입법 취지와 직업안정법상 근로자공급 금지 규정이 존속하고 있다는 사정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근로자의 권리 구제의 측
면에서 보더라도 미흡한 점이 있다.
파견법 소정의 “근로자파견”이 되기 위해서는 법에서 정한 의무적 기재 사항을 명시한 “근로자파견계약”을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가 서면으로 체결해
야 한다. 즉, 근로자파견계약은 요식행위인 것이다. 이 요식성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는 파견법 소정의 근로자파견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파견법
이 적용될 수도 없다. 직업안정법이 근로자공급을 금지하면서 근로자공급에서 제외하고 있는 “근로자파견사업”은 파견법 제2조 제2호의 규정에 의한
근로자파견사업이므로, 근로자파견계약을 서면으로 체결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파견법 소정의 근로자파견사업이 될 수 없고 따라서 근로자공급사업에서 제외
될 수 없다. 한편, 근로자파견계약이 요식행위라는 말은 근로자파견계약의 당사자 및 계약 내용에 있어서도 파견법이 설정하고 있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 파견법에서 여러 가지 법 위반 유형에 대해서 아무런 법적 효과를 규정하지 아니한 것은 적법한 파견만을 규율 대상으로
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파견법상의 요건들 중 어느 하나라도 위반한 경우는 모두 직업안정법의 규율 대상이 된다.
2006년 개정된 현행 파견법에서는 파견법 규정 위반 행위에 대해서 일정한 법률 효과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 파견법에서도 근로자파견계약
의 요식행위성을 위하여 마련된 규정들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또한 직업안정법의 관련 규정도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식성을 충족하
지 못한 행위는 여전히 직업안정법의 관할에 속하게 되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현행법은 여기에 ‘더하여’ 파견법상의 특별한 제재를 추가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근로자는 파견법 위반 행위에 대하여 파견법과 직업안정법을 동시에 또는 선택적으로 주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법이 근로자파견계약을 요식행위로 규정한 이유는 종속효과를 억제하는 효과를 부여하기 위해서라고 이해해야 한다. 종속효과란 “종속(지휘명령) 있으
면 근로계약 있다”라는 것이다. 이는 근로계약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실무상으로는 근로자성의 인정 여부를 판단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실질주의
를 취하는 판례의 확고한 입장이다. 근로자파견계약은 “종속(지휘명령) 있지만 근로계약 없다”라는 말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을 근로자파견계약의 억
제효과라 할 수 있다. 이 억제효과는 파견법에 의하여 창설된 효과이다. 종속효과를 억제하는 효과가 도급이나 위임에서는 없다. 파견법이 근로자파견
계약을 요식행위로 규정하고 있는 까닭이다. 또한 직업안정법상의 근로자공급 금지 규정을 존속시키면서 파견법을 별도로 입법하여 근로자파견을 합법화
한 까닭이기도 하다. 직업안정법 소정의 “공급계약”이 근로자파견계약과 달리 요식행위가 아니라 불요식행위라는 점도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한다. 그러
므로 근로자파견계약을 서면으로 요건을 갖추어 체결하지 않은 경우는 파견법이 아니라 직업안정법의 규율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파견사업주
(공급사업주)가 노동조합이 아닌 한 국내근로자공급을 금지하고 있는 직업안정법 제33조 및 동법 시행령 제33조 위반이라는 말이다. 요컨대, 위
법한 근로자파견(불법파견)이 아니라 위법한 근로자공급이다. 위법한 근로자공급의 사법적 효과는 원칙에 따른다. 즉, 억제효과를 갖는 근로자파견계약
이 없으면 종속효과가 나타나게 되고 근로계약이 성립하게 된다.
한편, 사내하도급이 적법한 경우에는 도급의 특수한 유형으로서의 사업장내 하도급이라는 법률적 실체를 갖게 되고, “적법한 사내하도급”에 대한 적절
한 규율 틀이 논의 대상이 된다. 주된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사내하도급화를 사업이전으로 보고 그에 따른 근로계
약의 이전 효과 및 근로자의 거부권을 검토하는 것이다. 사업을 운영하는 주체(사용자)는 변경되었지만 그 사업 자체는 폐지되지 않고 새로운 주체
에 의하여 여전히 운영되는 경우를 ‘사업이전’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기존 사업의 일부를 사내하도급으로 전환하는 것은 사업이전에 해당한다. 왜냐
하면 사업의 일부를 운영하는 주체는 변경되었지만 그 사업의 일부 자체는 폐지되거나 소멸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주에 의하여 계속해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이전은 수급인(하도급자)이 변경되는 경우에도 일어날 수 있다. 사업이전론은 사업이 완전히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만 바뀐 채
로 동일한 사업이 계속 영위되고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특히 서비스업에서 중요한 점이다. 왜냐하면 서비스업에서는 별다른 물적 기반
의 이전 없이 사업의 주체만 바꾸는 방식으로 사업의 이전이 쉽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도급인의 영향력이 작용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
할 수 있으며, 나아가 도급인의 개입 없이 수급인들만의 결정으로 사업이 이전될 수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신구 수급
인 사이에 아무런 계약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은 도급인을 매개로 하여 비가시적 계약 관계가 성립하는 셈이다. 사내하도급이 사
업이전에 해당하는 경우, 이전 사용자(도급인)와 근로자 사이의 근로계약은 새로운 사용자(수급인)와 근로자 사이로 이전되는 것이 ‘원칙’이다. 마
찬가지로, 수급인이 교체되는 경우에, 구 수급인과 근로자 사이의 근로계약은 신 수급인과 근로자 사이로 이전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근로자는
반대의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자신의 근로계약이 수급인에게 이전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다. 둘째, 패러다임으로서의 사업 개념에 근거하여 도급인의 사
업과 수급인의 사업을 하나의 사업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실적 응용으로서 단체협약의 일반적 구속력 및 지역적 구속력 규정의 적용 문제와
노사협의회 설치 및 단체교섭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셋째, 입법을 통하여 사내하도급에 있어서도 도급인의 근로자와 수급인의 근로자 사이에 근
로조건 및 사회보장에 있어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난 차별에 대해서는 현행 파견법상 차별 시정 제도를 준용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차별 시정 제도의 준용은 적법한 사내하도급의 경우에만 할 것이 아니라 위법한 사내하도급의 경우에도 (본격적으로는 근로계약에 근
거한 임금지급청구권으로 해결되겠지만) 신속한 권리 구제를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차별 시정 제도의 준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