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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의 구별기준
대전지방법원 2024.04.04 선고 2022노2555 판결
- 출판일 2024.06.15
- 저자문준혁(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고용복지법센터 연구원, 법학박사)
판결 요지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의 구별기준인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로서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하지 아니하는 자’의 의미는, 법률해석의 일반 원칙에 따라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한다’라는 문언의 객관적 의미에 충실하되,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ㆍ증진함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입법목적 및 개정 전ㆍ후의 법률 조항의 내용과 그 해석론, 개정 취지와 개정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규범 목적에 부합하도록 해석하여야 한다.
건설업은 그 특성상 여러 단계의 도급을 거쳐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때 건설공사를 처음으로 ‘도급하는 자’, 즉 최초 도급인을 건설공사의 ‘발주자’라고 한다. 이처럼 큰 틀에서 보면 건설공사발주자도 도급인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도급인의 조치의무와는 별개로 건설업에서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건설공사발주자의 설계변경이나 공사기간 연장 의무 등에 대해 규율하면서도,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아 건설공사발주자의 경우 발주자로서의 의무에 더해 도급인으로서의 조치의무도 같이 부담하는 것인지가 모호한 지점이 있었다.
이후 2019년에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해 도급인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과 함께,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를 명확히 구별하기 위한 정의규정이 신설되었다. 이에 따라 현행 산안법은 도급인을 “물건의 제조ㆍ건설ㆍ수리 또는 서비스의 제공, 그 밖의 업무를 도급하는 사업주”로 정의하면서 “다만, 건설공사발주자는 제외한다”라는 단서를 붙여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가 중첩되지 않고 명확히 구별됨을 밝히고 있다(법 제2조 제7호). 나아가 산안법은 건설공사발주자를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로서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하지 아니하는 자”로 정의하면서 “다만, 도급받은 건설공사를 다시 도급하는 자는 제외한다”라고 하여(법 제2조 제10호), 건설공사를 최초로 도급하는 자가 그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산안법상 건설공사발주자로서의 책임을 부여하고, 그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하는 경우에는 산안법상 도급인으로서의 책임을 부여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를 명확히 구별하면서, 양자의 의무에 대해서도 달리 정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제5장에서 “도급 시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규정을 두면서도 제2절을 “도급인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제62조~제66조)로 하고, 제3절을 “건설업 등의 산업재해예방”(제67조~제76조)으로 나누어 규율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건설현장 등에서 산업안전보건규칙 등을 위반하여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그 공사의 최초 발주자가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한 경우, 도급인으로서 관계수급인을 위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법 제63조)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징역 또는 벌금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를 구별하는 핵심적인 기준, 즉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하지 아니하는 자”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하는지 여부는 당해 건설공사가 사업의 유지 또는 운영에 필수적인 업무인지, 상시적으로 발생하거나 이를 관리하는 부서 등 조직을 갖췄는지, 예측 가능한 업무인지 등 다양한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하였으나, 2019년 법 개정 후 아직까지 이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이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어 여러 하급심 판결들이 나름의 판단기준을 밝히고 사안의 해결을 시도해오고 있다.
대상판결에서도 산안법상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의 구별이 문제가 되었다. 먼저 쟁점과 관련된 사실관계만 소개하면, 피고인 한국중부발전은 신서천화력발전소 건설공사 중 배연탈황설비 공사를 금호건설에 도급하여 진행하고 있었는데, 2020.4.10.에 위 설비공사의 전기제어공사 작업 중 변압기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금호건설 소속 근로자 1명이 사망하고 한국중부발전 소속 근로자 및 하청업체 근로자 3명이 부상을 입게 되었다. 그러자 검사는 한국중부발전이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에 따라 도급인으로서 자신의 근로자와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다하지 않아 이 사건 재해가 발생하였다고 보아 공소를 제기하였는데, 이에 대해 피고인 한국중부발전은 자신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에 불과할 뿐이므로 도급인으로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항변하였다.
이 사건 1심판결은 한국중부발전의 항변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피고인 한국중부발전은 전력자원의 개발, 발전 및 이와 관련된 연구 및 기술개발을 하는 회사로서 종합건설업면허를 가지고 있지 않고, 이와 관련한 전문기술인력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고, 한국중부발전의 지배하에 있는 특수한 위험요소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해당 공사를 수급한 금호건설의 시공 능력이나 이 사건 배연탈황설비 공사의 도급금액이 약 279억에 달하는 등의 사정을 고려하면 금호건설이 위 공사에 따른 안전관리에 대한 권한과 위험을 모두 인수한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이를 종합하면 결국 한국중부발전이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하는 지위, 즉 도급인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2심인 대상판결은 1심판결과 달리 피고인 한국중부발전이 도급인으로서 구체적 안전조치의무를 위반하였음을 인정하였다. 먼저 대상판결은 도급인의 개념인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하였는지의 판단기준으로서 ① 사업의 주목적을 수행함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공사이거나, 예산, 인력, 기술적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상당한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예산 절감 또는 위험의 회피 등을 이유로 도급하는 경우(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② 사업의 일부를 분리하여 도급함으로써 사업의 전체적 진행과정을 총괄하고 조율할 능력이나 의무가 있는 경우, ③ 작업상 유해ㆍ위험 요소에 대한 실질적인 관리 권한이 있고 관계수급인이 임의로 유해ㆍ위험 요소를 쉽게 제거할 수 없는 경우 등의 어느 하나에 해당한다면,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여 도급사업주로서의 책임을 부담하는 건설공사도급인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기준을 제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대상판결은 ① 이 사건 배연탈황설비 공사를 포함한 발전소 건설공사는 한국중부발전이 시행하는 전력사업의 주목적을 수행함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공사에 해당하고, ② 한국중부발전은 위 공사에 대한 상당한 전문성도 보유하고 있으며, ③ 한국중부발전은 발전소 건설사업을 27개사에 분리ㆍ도급주어 시공하면서 별도 조직을 갖추어 이를 총괄ㆍ관리하였고, ④ 한국중부발전이 자신의 사업장 내에 있는 이 사건 배연탈황설비 공사 현장을 실질적으로 지배ㆍ관리하면서 전기 작업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수전업무를 직접 담당하여 고압의 전력 공급에 따른 위해ㆍ위험 요소를 실질적으로 관리해 온 사실이 인정되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 한국중부발전은 이 사건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대상판결은 한국중부발전이 도급인으로서 부담하는 안전조치의무를 다하지 않아 이 사건 재해가 발생하였다고 보고, 한국중부발전에 벌금 5천만 원을 선고하였다.
대상판결에 대해서는 한국중부발전 등 피고인들이 상고하였고, 결국 대법원에서 최종적인 판단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2024도5902). 현재 대법원에는 대상판결과 유사하게 산안법상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의 구별이 문제가 된 사건이 계류 중이다(2023도14674). 공기업인 인천항만공사가 발주한 갑문보수공사 현장에서 중량물 취급 과실로 근로자가 사망하자 검찰이 인천항만공사의 대표자를 산안법 제63조에 따라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는 ‘도급인’으로 보아 기소한 사안에서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린 것이다. 위 사건 1심판결의 경우에는 그 판단기준에 대해 “사실상 의미에서 실제로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하였는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규범적으로 평가하여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하는 지위에 있는 자에 해당하는지에 의해 판별해야”하고, 나아가 이 사건 보수공사는 인천항만공사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인천항만공사를 도급인으로 보아 법인에 벌금 1억 원, 그 대표자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였다. 다만 위 사건 2심판결의 경우에는 도급인에서 제외되는 건설공사발주자인지 여부는 1심과 같이 사실상 의미가 아니라 규범적 관점에서 판단되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해당 건설공사의 시공을 직접 수행할 자격이나 능력이 없이 건설공사를 다른 사업주에게 도급할 수밖에 없는 자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할 뿐 도급인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처럼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의 구별기준, 즉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하였는지 여부에 대한 하급심 판결의 법리와 판단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므로, 앞으로 대법원에서 새로운 판단기준을 어떻게 제시할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나아가 이에 대한 판단기준은 최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상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의 범위, 즉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개념을 해석하는 데도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