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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협약체결권한의 남용과 협약자치의 한계

  1. 서울고등법원 2018-02-02 선고, 2017나2056002
  2. 저자 권오성

【판결요지】

대표이사가 대표권의 범위 내에서 한 행위는 설사 대표이사가 회사의 영리목적과 관계없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그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일단 회사의 행위로 유효하고, 다만 그 행위의 상대방이 대표이사의 진의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회사에 대하여 무효가 되는 것이며(대법원 2004.3.26. 선고 2003다34045 판결 참조), 이는 노동조합의 대표자가 대표권한을 남용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할 것이다.

 

대상판결의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1) 피고는 자동차 운수사업 등을 영위하는 주식회사이고, 원고는 피고의 근로자들로 조직된 기업별 노동조합이다. 원고와 피고 사이에 2013. 1. 1. 체결된 단체협약(이하, 이 사건 단체협약) 제21조 제5호, 제54조는 피고가 연 1회 유급으로 (추계)야유회를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제21조(유급휴일)

다음 각 호는 유급휴일로 한다.

⑤ 추계야유회 1일


제54조(야유회)

회사는 조합원의 사기 앙양을 위하여 연 1회에 한하여 야유회를 실시하되 야유회에 상응하는 사항은 노사 간 합의할 수 있다.

 

 

(2) 원고와 피고는 2013.12.10. “단체협약 제21조 5항 및 제54조에 의거하여 회사는 야유회를 실시하여 왔으나 회사의 경영악화로 인하여 단체협약 제74조 제2항에 근거하여 2014년부터 야유회를 유급휴가에서 제외하고 실시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는바(이하, 이 사건 합의), 위 합의 당시 원고의 위원장 A는 이 사건 합의와 관련하여 원고의 집행부나 조합원들과 상의하거나 사전에 노동조합의 전체 의견을 묻거나 사전에 이를 공지하지 아니한 채 피고의 대표이사 B와 둘만이 있는 자리에서 이 사건 합의를 체결하였다. 한편, 이 사건 합의 이후 원고의 위원장은 C로 변경되었고, A는 2014.2.경 피고 회사에서 사직하였다.

(3) 피고는 이 사건 합의 이후에도 이 사건 합의 내용을 행정관청에 신고하지 않았고, 원고 조합원들에게 곧바로 공지하지도 않아 원고 조합원들은 이 사건 합의 내용을 2014년 가을 야유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관계 아래서, 제1심 법원은 이 사건 합의 체결 당시 피고의 대표이사 B가 “A가 원고 집행부 또는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조합원의 근로조건 유지개선을 위한 원고 조합의 목적(원고 조합 규약 제6조)과 관계없이 피고 회사의 일방적 이익을 위하여 독단적으로 이 사건 합의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였음을 전제로 “대표이사가 대표권의 범위 내에서 한 행위는 설사 대표이사가 회사의 영리목적과 관계없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그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일단 회사의 행위로 유효하고, 다만 그 행위의 상대방이 대표이사의 진의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는 회사에 대하여 무효”라는 소위 ‘대표권남용의 법리’를 적용하여 이 사건 합의를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대상판결의 이러한 판단의 결론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 다만, 사적자치의 확장이 문제되는 사법(私法)상 대리(代理) 내지 그 변형으로서의 대표(代表)에 관한 법리를 협약자치가 문제되는 단체협약의 효력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대상판결은 ‘협약자치의 내재적 한계’가 문제되는 적례(適例)로 생각되는바, 아래에서는 이에 관하여 간단히 살피고자 한다.

(1)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제33조에 의해 승인된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의 실질적 근거는 단체협약이 근로자에 있어서 형해화하기 쉬운 계약자유를 집단적 차원에서 회복하고, 근로조건 결정과정에 근로자를 실질적으로 관여하게 할 가능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구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단체협약을 통해서 근로자의 계약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된다고 하는 것은 근로자의 의사가 협약내용에 반영된다고 하는 것, 즉 근로자 개인의 자발적 의사에 기해서 형성된 노동조합이 그 목적의 범위 내에서 내부의 ‘민주적 절차’를 거쳐 집단적 의사를 형성하고, 이와 같이 민주적으로 형성된 조합의사에 근거하여 단체협약이 체결됨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의 실질적 근거에서 협약자치의 내재적(內在的) 한계가 도출되는바, 특히 절차적으로는 협약 체결을 추진한 집단적 의사가 개별 의사를 적절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되고, 그것을 위해서는 집단의사가 민주적으로 형성되어야만 한다. 특히 근로조건의 불이익 변경은 통상 조합원이 예상하지 않는 바이기 때문에 특별히 신중한 절차가 필요하다.

(2) 한편, 노조법 제29조 제1항은 노동조합의 단체성(團體性)에서 나오는 당연한 내용을 확인하고 있을 뿐, 위 규정이 없더라도 노동조합의 대표자는 노동조합을 대표해서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 따라서 노조법 제29조 제1항이 창설적 효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위 규정에 근거하여 노동조합 대표자의 ‘단체협약체결권한’을 노동조합 대표자의 최종적인 권한으로 해석하는 것은 노동3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헌법이 최고원리로 상정하고 있는 민주주의원칙에 반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대표자 또는 수임자가 단체교섭의 결과에 따라 사용자와 단체협약의 내용을 합의한 후 다시 협약안의 가부에 관하여 조합원총회의 의결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은 대표자 또는 수임자의 단체협약체결권한을 전면적, 포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사실상 단체협약체결권한을 형해화하여 명목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어서 위 법 제33조 제1항의 취지에 위반”이라는 대법원 1993. 4.27. 선고 91누12257 판결은 단체교섭의 결과 합의가 성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준투표 조항을 이유로 노동조합이 협약화를 거부할 수 없다는 취지로 제한적으로 읽어야 할 것이지, 이를 노동조합 대표자의 단체협약체결권한이 제한될 수 없다는 취지로 보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3) 이 사건의 경우 원고 노동조합의 대표자 A는 이 사건 합의를 통하여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면서도 원고의 집행부나 조합원들과 상의하거나 의견을 묻는 등 조합의사의 형성에 필요한 민주적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아니하였다. 따라서 조합의사의 형성과정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이 사건 합의의 효력이 조합원에게 미친다면 이는 단체협약의 규범적 효력을 인정한 노조법 제33조의 취지에 반한다. 즉, 이 사건 합의는 협약자치의 내재적(內在的) 한계를 일탈한 것으로, 합의의 상대방인 피고가 이러한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 규범적 효력이 부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상판결은 노동조합의 대표자가 단체협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행할 수 있는 배임(背任) 행위에 대한 사후적 통제의 수단의 하나로 대표권남용의 법리가 고려될 수 있음을 긍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민상법의 영역에서 형성된 대표권남용의 법리를 협약자치가 문제되는 단체협약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물론, 단체협약 이외의 사법상 거래에 있어서는 대표권남용의 법리가 노동조합에게도 당연히 적용될 것이다). 단체협약의 체결과정에서 단체협약체결권한의 남용이 문제되는 경우는 대부분 협약자치의 내재적(內在的) 한계를 일탈한 경우라고 생각되는바, 이러한 경우 대표권남용의 법리를 빌려올 것이 아니라, 협약자치의 내재적 한계로 정면에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후자로 접근할 경우, 사용자가 노동조합대표자의 배신적 의도를 알거나 알 수 있었는지 여부는 단체협약의 효력 유무를 판단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권오성(성신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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